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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Apr 02. 2020

저녁 7시, 나를 위해 요리하는 시간#5

좋은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은 아니야

나는 원래 서울 태생은 아니지만 대학교 진학을 서울로 한 이후 직장생활까지 십년 남짓 서울생활을 했다. 그러다 공공기관이었던 전직장이 지방 이전하면서 나의 부산라이프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부산라이프를 시작하고 얼마지나지 않아서이다.
그날은 우리부서 회식날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하여 나와 부장님은 사무실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다행히 늦게나마 상황은 해결되어 부장님과 나는 회식장소로 출발하기 위해 택시를 탔다.

- 기사님 중앙역 11번 출구로 가 주세요
-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어? 중앙동 방향이요, 남포동 방향이요?
- 기사님, 저희가 부산 지리를 잘 몰라서요...지도를 뽑아왔는데 보여드리면 될까요?
- 여기가 어디야? 나 참...
여자도 군대를 보내야 된다니까, 군대를 안가니 지도도 볼 줄 모르지

지금 21세기 나의 귀를 의심케 하였던 그 말.
길을 몰라도 부끄럽지 않은 택시기사 앞에서 나는 왜 여자라 죄인이 되어야 하는 걸까.
나 혼자였다면 차 세우라 해서 내렸을테다.
나는 부장님이 불편하실까봐 성질 죽였다.
하지만 부장님은 나를 위해 성질을 살려 주시지 않으셨다.
내리고도 부장님은 한마디 위로도 없으셨다.
늦게까지 대기했던 내게 미안했던 팀장님이 부장님께 김변 잘 모셔왔냐 해도 내가 잘 모셔오려고 택시타고 왔어, 택시비도 내가 냈어라시며.
부장님, 그날 저는 잘 가지 못했어요.
아무튼 이미 한 차려 무르익었고 이제 파할 때가 되었던 회식자리.
음식점 문 닫을 시간이라 추가주문은 안된다지만 그날의 주메뉴였던 참치를 나는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딱히 아쉽지도 않았다.
부서원들이 참치로 배 채우느라 먹지 못한 밑반찬들이 오히려 별미였다. 그 중에도 생선조림.
매콤달콤한 가자미 조림은 식었어도 입맛을 돌게 한다.

나이가 들어보니 사람좋다 소리 듣는 사람이 꼭 좋은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다. 누군가에게는 실제로 좋은 사람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지 않기도. 니체는 말했다. 착한 사람 만큼 나쁜 사람도 없다고. 조직생활을 하다보니 남에 부장일 때 좋은 사람이 내 부장으로 좋은 사람은 아니거나. 클라이언트에게 좋은 파트너가 고용변에게는 좋지 않은 사장님이거나.
언젠가 동기가 말했다. 좋은 사람? 나한테 좋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지.

어쨌든 유난히 고단한 날, 맵고 짜고 그런게 땡기지만 또 소화는 잘 안될 만큼 힘들었던 그런 날은 생선조림을 해보자.


무, 감자, 양파, 생선, 양념장 넣고 물 부어 한꺼번에 끓였더니 실패!
감자와 무는 잘 안 익고 생선살은 물러졌다.
두껍게 썬 무와 감자를 양념장 넣고 물을 부어 먼저 끓이다가, 물이 끓으면 그때 생선을 넣어 푹 졸여준다.
양념장은 간마늘 반 스푼, 고추장 한 스푼, 고춧가루 한 스푼, 청하(소주는 끝맛이 쓰다는 경험담이 종종 있어 청하를 선호하는 편이다.) 한 스푼

그리고 티 안날 정도로 된장 4분의 1 스푼
단, 가자미 한마리 기준이므로 생선양에 따라 양념장 양은 조절해준다.
원래 양념장에 국간장을 넣어주지만 고추장과 생선도 어느 정도 간이 되어 있는 편이라 국간장은 마지막에 간을 보고 필요하다 싶으면 첨가한다.
설탕을 한꼬집 넣어주면 비린내도 잡히고 더 맛있다고 한다.
나는 웬만하면 설탕은 넣지 않으려고 한다. 아 개인의 취향일 뿐 설탕에 거부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비린내가 덜 잡힌다 싶으면 잡힐때까지 청하를 넣는다.
청하 때문에 기분이 풀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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