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결심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은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네가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
데미지를 입은 후에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구가 더딘 이유는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다.
- 미생 中 -
"진짜 퇴사"를 하겠다고 마음은 먹었는데 디데이는 다가오고 막상 준비가 되어가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솔직히 무엇부터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근로소득세 납부자의 삶에서 사업소득세 납부자의 삶으로의 변화는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이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텐데. 이런 생각을 하면 숨이 턱 막힙니다.
다이어리를 꺼내서 무엇을 해야할지 리스트를 적어보려 하였습니다. 1번부터 막혔습니다. 한참을 고민해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텅 빈 페이지를 보고 그냥 울어버렸습니다. 한바탕 울어보니 그냥 퇴사하지 말까란 생각도 듭니다. 가끔 좋은 날도 있고 종종 좋은 사람도 있고 대충 살 수는 있는데. 출근만 해도 월급이 나오는데. 생각없이 산다는 것이 최고 단점이었는데 고민없이 살 수있다는 것은 지금 이순간 가장 큰 장점으로 보입니다.
할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고, 일단 할 수 있을까 두렵습니다.
그냥 다 무를까?
어차피 회사에 통보하기 전이고 딱히 준비한 것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퇴사하겠다는 결심만 하고 시간만 보낼 뿐입니다.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준비 같은 건 없다, 시작을 하면 하게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에 적응하는 과거의 마인드는 버려라. 이제는 니가 만들어 가는 거다.
시작을 해야 뭐가 필요한지 알지.
아, 평생을 선행학습을 하며 살아온 인생인데 이런 말은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닥치면 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 닥친 순간의 압박을 견뎌내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닥치면 하게 되어 있다는 말을 신뢰하기 보다는 닥쳤을 때 그 압박에 나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달고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나의 성실성을 세상이 평가절상하는 이유입니다. 닥쳤을 때 그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내가 포기할까봐 두려워 뭐든 미리 해 두는 내 성향을 세상은 성실하다 평가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과업을 해내는 총량은 남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적을 수도 있습니다.
마감에 쫓기며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하느냐 여유롭게 해서 마감 전에 끝내나 그 차이일 뿐. 세상이 후자를 성실하다고 봐 주는 것일 뿐.
아무튼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선행학습을 하고, 평시에 예복습으로 시간을 버는 방법은 이제 안 통한다고 하니 더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그렇다면 70일이 넘는 시간을 유보한 이유가 없는데 말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니 더 불안합니다. 시간을 그냥 보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과 가시적인 성과에 대한 금단증상이 합쳐져 어떡하지, 어떡하지 걱정만 하다 문득. 집에서 가장 가까운 헬스장을 등록하였습니다.
난생 처음 PT 수업도 같이 말이지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체력이라도 만들자. 닥치면 그 때 이 악물고 버틸 수 있도록 체력을 만들어 놓자.
그렇게 하루에 두 시간씩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선 사업소득세 납부자의 삶을 시작하기 위한 유일한 준비입니다.
일단은 이렇게 시작해 봅니다.
"하지만 난 그런 건 못 해."
운동을 거부할 때 흔히 하는 말이다.
"일주일에 세 번씩이나 헬스장에 가는 건 도저히 못 해."
그러면 일주일에 한 번만 가라.
"그래도 난 마라톤은 할 수 없어."
그러면 1킬로미터만 달려라.
"난 달리기는 못 하는데......"
그러면 걸어라.
못 하는 일에 초점 맞추기를 그만두면 자기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알고 놀라게 될 것이다.
(앨릭스 코브, 우울할 땐 뇌과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