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로 살고 싶어서
비난이 두려워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게 아니라
기꺼이 이상한 사람으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멀쩡하고 괜찮은 사람인지 타인에게 해명할 게 아니라
자기만의 세계를 잘 구축해서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 김혜령,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 -
조직생활 잘 하는 사람들은,
첫 째 무던하고 무난합니다. 무던하다는 것은 민감하지 않다는 것이며 무난하다는 것은 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둔하기까지하면 최고인 듯 합니다.
둘 째 누구와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합니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그래서 적이 없습니다.
셋 째 자신의 잣대로 옳고그름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랬구나 받아들일 뿐입니다.
넷 째 지나치게 감정이입하지 않습니다. 직장은 월급받는 데일 뿐이니까요.
다섯 째 감정을 표정에 드러내지 않습니다. 감정이 없으면 더 좋겠지만 감정이 생겨도 쉽게 얼굴에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런 것만 잘 되어도 한국에서 조직생활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게 안 되니 말입니다.
저는,
첫 째 굉장히 민감합니다. 더듬이가 500개쯤 달린 사람처럼 말이죠. 사람들의 미묘한 표정 변화, 어제와는 다른 오늘 사무실의 공기, 말하지 않는 행간이나 괄호의 의미 이런 것들에 굉장히 예민합니다. 타고난 예민함도 한 몫 하는데다 여러가지 환경과 상황이 이런 능력을 후천적으로 발달시킨 것 같습니다. 거기다 무난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딱히 무난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둘 째 싫고좋고가 명확하여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너무 다가가서 상처받거나 너무 선 긋다가 적을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관계가 항상 힘들지만, 다가가지 않았다면 그저 인사나 하고 말았을 사람들과 조금더 가까울 수 있었고, 사람을 가려 사귀니 생이 더 정갈한 것 같아 만족스럽습니다. 정성껏 가꾼 정원처럼 나의 인간관계가 귀하디 귀한 것으로 채워지는 것 같아, 상처투성이로 내 주변을 둘러보았을때 뿌듯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셋 째 싫고좋고도 명확한데 옳고그름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다. 매사에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려 하니 아주 피곤하고 매일 가슴 속에 화가 그득 차 있습니다. 회사라는 공간은 권선징악이 실현되는 곳은 아니니까요. 매일 화가 나고 실망하고 그러다 어느 날 정이 뚝 떨어져 버립니다. 누군가는 이런 저를 보고 말합니다.
젊어서 그래.
나이들면 저절로 사그라든다고 하니 기다려 보려구요. 나이 먹을 수록 예전같지 않다는 것이 벌써 느껴지기도 합니다. 스무살 땐 죽어도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서른에는 공감이 되고, 서른살에 때려 죽일 놈 같았던 그 사람들이 마흔살엔 별날 것 없는 사람임을, 조금씩 이해해 갑니다. 그러니 오십쯤 되면 옳고그름의 경계가 많이 옅어져 있지 않을까, 결국에 그렇게 될 걸 굳이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으려 합니다.
넷 째 누가보면 내 회사인 것처럼 그렇게 오바를 합니다. 쓸데없는데 회삿돈 나가는 게 그렇게 아주 아까워 죽겠고, 적재적소에 인재가 쓰이지 못함이 그렇게 안타깝습니다. 자리에 맞지 않는 사람을 앉혔다고 화가 나고, 보상받아 마땅한 사람이 보상받지 못함에 분노합니다. 나를 더 대우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내가 속한 이 조직의 상벌이 좀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현타가 옵니다. 우리 아빠 회사도 아닌데, 난 왜이러는 걸까라며.
하지만 이것이 제가 삶을 바라보는 태도일 것이고, 저는 이런 삶의 태도가 싫지 않습니다. 다만 출근해서는 다른 인격을 내놓을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란 아쉬움이 들 때가 있습니다.
다섯 째, 표정관리가 영 젬병입니다. 바둑을 배울 걸 그랬습니다만. 간혹 앞뒤가 다르지 않아 좋다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그렇게 봐주니 고맙습니다.
전 이런 제가 싫지 않습니다. 하지만 조직생활 속에서는 자꾸 자책하게 됩니다. 자책하지 않고 생긴대로 살아보려고 퇴사하려 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 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군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 몰라
(네모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