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나의 꿈은
언젠가.
소담한 상가주택을 하나 사서,
1층에는 변호사 사무실,
2층에는 분위기 좋은 위스키바,
3층에는 부모님의 주거공간.
1층은 같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공간으로, 2층은 위로를 주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3층은 부모님이 편히 지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아직 기력이 있으신 동안엔 부모님이 짬짬이 언제든 딸을 볼 수 있도록, 연세가 더 드신 뒤에는 제가 가까이에서 돌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지금 부모님은 당신들 연세에 비하여 건강이 나쁜 편은 아니십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거동도 총기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먼 훗날 그런 날이 왔을 때 시설에 보내드리는 대신 가까운 곳에 거쳐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간병해 주실 분을 모셔 넉넉하게 사례를 해 드릴 수 있도록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습니다.
100세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간간이 들려오는 지인들의 부고 소식은 마냥 남일 같지가 않습니다. 그들과 나의 나이차를 계산해 남은 시간을 추측해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간병인을 고용해 부모님을 직접 모신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일 것입니다. 근로자에게 가족돌봄휴직이라는 제도가 보장되고 있긴 하지만 제도의 운용현실을 보면 그것은 지속 가능한 돌봄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1-2년, 아주 길게는 5년까지 시한을 둔 돌봄을 위해서는 정말 좋은 제도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 장기간의 돌봄을 지속하며 근로자의 삶을 양립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든다 해도 어려울 것입니다. 근로자의 근로소득은 결국 일정 부분 "근태소득"이니까요. 즉,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본질적으로 근로자가 자신의 시간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근로자는 휴직을 택할 경우 일정기간 근로소득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휴직기간이 길어지면 조직에서의 입지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휴직으로 인한 불이익을 제도로 금지시킨다 하더라도 업무숙련도와 성과에서 다른 직원들과 격차가 벌어지는 것까지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근로자는 회사의 업무개시와 종료시간 안에서 업무시간을 조절해야 하니 시간을 조정하여 업무시간을 일정하게 확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즉, 필요하면 휴직, 휴가, 근로시간 단축과 그로 인한 역할 감소를 감수해야지 근로시간 조정을 통해 진정한 일과 가정의 양립까지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내 일을 하게 되면 생업과 가족돌봄 시간의 경계를 스스로 설정할 수 있으니 본인의 노력과 의지만 있으면 일에서의 내 역할을 줄이지 않고도 가족에게 충분한 시간을 쓸 수 있습니다.
물론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불안정한 소득과 맺고 끊음 없는 업무시간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지 모릅니다. 시간을 자유롭게 쓰기는커녕, 근로자에겐 철저하게 보장되는 출근 전과 퇴근 후 자유시간 마저 없어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불확실한 것을 꿈꾸다 지금 가진 것조차 잃을 수도 있습니다.
미래까지 말할 것도 없이 지금 당장. 부모님과 여유롭게 여행을 가보고 싶습니다.
아직은 건강하시더라도 기력이 어제 같지 않음을 매번 느낍니다.
미루고 미루다 덜컥 후회하는 날이 올까 봐 겁이 납니다. 100세 인생이더라도 내일을 알 수 없으니까요.
여행을 즐길 만한 체력이 남아 있으실 때, 좋은 추억을 만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역시나 1년에 15일 연차로는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퇴사를 하려는 겁니다. 이 이유가 전부는 아니지만 이러한 이유도 있습니다. 그런데 덮어놓고 반대만 하시니 제가 얼마나 야속하겠습니까.
마음속에 한을 만든 것도 부모님이시지만, 그렇다고 정성과 사랑으로 나를 키우셨음을 의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제 살 깎아 나를 키우시며 많은 것을 희생하신 것도 압니다. 아니까, 알기 때문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제가 제고집만 피우지 못했던 이유입니다. 그 바람에 원망하고, 그래서 자책하고, 그러다 미워하고, 그리고 후회하게 됩니다.
어떤 유튜버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 부모는 자식이 행복하길 바라지 않는다. 그 자식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자식이 불행하지 않길 바란다.그런데 저는 불행을 피하는 길이 아니라 행복을 향하는 길을 가 볼까 합니다.
꿈만 꾸는 게 아니라 시도를 해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