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어플을 삭제했더니
옛 어른들은 한 때 TV를 바보박스라고 부르셨습니다.
TV 없는 세상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 말엔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최근 전문가들은 숏츠가 뇌를 썩게 만든다고 합니다.
숏츠 없는 세상에서 살아본 바로, 그 말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숏츠 없는 세상에서 살았을 때랑 비교하면 확실히 뇌기능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숏츠가 일상적인 이 세상에서 어느 날 나의 뇌가 책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퇴근 후에 책을 읽어 보려 했는데 일단 세 문장 넘어가면 집중이 되질 않습니다.
읽어도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가 되지 않고,
같은 문장을 두 세번 읽으며 겨우 이해를 해도 기억에 남질 않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잡생각이 떠오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세페이지를 못 넘기고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집어 듭니다.
- 이게 다 숏츠 때문인가봐.
생각이 드는 순간 유튜브 어플을 삭제했습니다. 저는 생각이 많은듯 하면서도 때로는 굉장히 단순하고 거침 없기도 합니다. 집중력과 사고력을 앗아 갔다는 생각이 들자 즉흥적으로 어플을 지웠습니다.
그리고 10일째. 어플을 삭제하고 10일이 지난 저의 일상은 이러합니다.
첫 째, 걱정했던 금단증상은 없었습니다. 솔직히 놀랐습니다. 습관적으로 숏츠를 보다 잠들곤 하였는데 갑자기 오늘부터 내 일상에서 없애는 게 가능할까 싶었습니다. 이완기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없애니 없는대로 그다지 아쉽지 않았습니다.
둘 째, 잠을 아주 잘 자게 되었습니다. 침대에서 휴대폰 사용이 불면증의 원인이라는 말이 사실이었나 봅니다. 침대에 누워도 쉽게 잠들지 않아 잠들 때까지 영상을 보다 보니 한두시간 순식간에 흘러가 버리곤 했는데 침대에서 영상을 보지 않았더니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어 다음 날 아침 알람이 울릴 때까지 깨지 않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하마터면 수면제 처방을 받으려 갈 뻔 하였습니다.
셋 째, 시간이 아주 많아져 버렸습니다. 가장 긍정적인 효과입니다. 집에서 아무 생각없이 습관적으로 영상을 보다보면 한나절이 삭제되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이름은 숏츠인데 잡아먹는 시간은 보통 롱(long)인 게 아닙니다. 유튜브를 삭제해서 영상시청을 못하니 시간이 아주 많아져 버렸습니다. 퇴근 후 여유로운 시간에 꾸준히 운동을 하고,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립니다. 불면증과 함께 난독증도 고쳤습니다.
다시 설치하고 싶은 유혹이 잠시 들긴 하였습니다. 자영업 준비를 위해 자영업자들의 생생한 삶을 미리 간접경험하기엔 유튜브만한 플랫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데 다시 설치하기엔 없이 지낸 시간이 너무 아깝습니다. 며칠 안 되긴 했어도 마음먹은 김에 습관을 바꿔 놓고 싶습니다.
그래서 영상 대신 책을 택하고 사람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불안할 때마다 지금 필드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볼까 합니다. 어플을 삭제하고 되돌려 받은 시간이란 존재가 너무 소중해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