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두부라면

아빠의 즐거움을 지켜드립니다

by 푸른국화

며칠 전 본가에 들려서 저녁을 먹으려는데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버럭 화를 내었다.

화 내지 마시라는 내 말에 한번더 버럭하시고는 방에 들어가신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께 어제 저녁에는 싸우실 이유가 없었는데 왜 어머니랑 싸우셨냐고 여쭤보니, 싸우긴 누가 싸웠냐고, 내가 일방적으로 혼낸거지 라고 하신다. 그러면 혼내실 이유가 전혀 없는데 왜 혼내셨냐니까, 따뜻한 밥 지어놓고 국 데워놨는데 밥 안먹고 주전부리 들고 앉으니 섭섭해서 그랬다고 하신다.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시냐니까 화낸거 아닌데 아빠가 목소리가 크고 말투가 투박스러워서 그러신다고 한다. 그러신 줄 알면서 버럭하셨냐니까 엄마랑 아빠는 그 재미로 사신다고 하신다.(엄마 생각은 다를텐데...)


따뜻한 밥과 안전한 집은 아빠에게 인생과 같은 의미이다. 아빠는 평생 따뜻한 밥과 안전한 집을 지키기 위해 사셨다. 그런 아빠가 요즘 제대로 드시지를 못한다. 제때 치료하지 못한 위와 치아가 나이 드실수록 말썽이다.

이유식처럼 연세드신 부모님이 드실만한 게 없을까 찾아보니 실버푸드라는 게 있는데 아직 실버푸드를 드시기엔 우리아빠는 젊다고 믿고 싶다. 벌써 아빠에게 실버푸드를 내밀기엔, 내가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요즘 핫하다는 순두부라면을 보고 저거다 싶었다. 조금만 변형하면 위와 치아가 약한 아빠를 위한 영양만점 별미가 될 것 같았다. 특히 엄마의 협조 없이도 아빠가 쉽게 해드실 수 있을 것 같아서 굿!


* 재료 : 쌀라면, 순두부, 양파, 간마늘, 우거지



우거지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

위가 약한 아빠가 식사로 드실거라 조금 비싸더라도 쌀라면을 이용하기로. 스프도 채수 베이스라 대기업 라면처럼 인공적인 맛이 아니라 고춧가루 냄새가 많이나는 풋풋한 스프이다. 라면의 생명은 자극적인 맛이라 생각하는 일인이지만 건강식을 만들 생각으로는 만족스러운 라면이었다.



팬에 올리브유를 넉넉히 두르고 간마늘 반스푼을 볶는다. 마늘향이 올라오면 양파 1/4를 같이 볶아준다. 양파가 갈변할때 쯤 잘게 다진 우거지를 넣고 같이 볶는다.



우거지까지 웬만큼 볶이면 라면스프 한개를 다 넣고 약불에서 볶아준다. 사진의 라면제품은 다른 라면보다 스프양이 넉넉한 편이다. 그래서 라면만 끓일 때는 스프를 남기는 게 좋지만 야채와 순두부를 같이 넣어줄테니 오히려 스프양까지 넉넉해서 굿! 가루가 없어질 때까지만 볶다가 물 한대접 붓고 끓여준다. 물이 끓으면 순두부부터 투하한다.



쌀면은 밀가루면보다 훨씬 빨리 익기 때문에 딱 2분 30초만 끓이라고 한다. 그래서 다른 라면이라면 면, 계란 순으로 넣겠지만 쌀면은 계란 먼저 면을 가장 마지막에 넣었다.



쌀면은 홍콩의 완탕면 식감이랑 비슷하면서 밀가루면보다 확실히 속이 편했다.

평생 당신의 즐거움보다는 가족을 위해 살아오셔서 아빠를 위한 시간에도 새로운 즐거움을 추구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아버지. 인생의 즐거움 중에서도 큰 즐거움인 먹는 즐거움이나마 잃지 않길 바랍니다.


그리고 퇴근한 직딩을 위해서는 고춧가루 팍팍팍, 청량고추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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