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단풍 속 아버지의 사랑

by 윤슬

단풍이 물드는 계절


가을이 오면, 나는 아버지를 떠올린다.

11월 4일, 단풍이 가장 깊게 물드는 계절.

아버지는 매년 팔공산 단풍을 보여주시며,

먹고 싶은거 미리 생각해둬”는 짧은 문자 한 줄로 내 하루를 채워주셨다.

그 글자 속에는 언제나

“내 딸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오늘도 그 마음을 안고 천천히 산책로를 걷는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사랑


그 사랑을 떠올리며 문득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생각난다.

소년에게 모든 것을 주지만, 돌아오는 건 부족함뿐인 나무.

어릴 적 나는 그 나무가 불쌍하다고 느꼈다.

그게 사랑이라면, 왜 마음이 아프기만 한 걸까.

나는 늘 생각했다.

사랑은 서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고.

부모님의 사랑도 그랬다.

그 깊고 넓은 희생을 나는 이해하고 느꼈지만,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음뿐이었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 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망각하고,

때때로 죄의식을 느끼며,

가끔씩 몰려오는 슬픔 속에서

나는 하루를 살아냈다.

시간은 냉정하고, 정확하게 망각의 선물을 선사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아버지의 사랑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낙엽과 나무의 치유


가을이면 낙엽이 쓸쓸히 떨어진다.

은행나무의 노란 잎, 단풍나무의 붉은 잎, 느티나무의 황금빛 잎.

하나하나가 저마다 이름과 색을 품고,

마치 아버지의 기억처럼 세상에 남는다.

그 잎들은 떨어지면서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땅속에서 천천히 흙을 어루만지고,

나무를 치유하며, 다시 생명으로 돌아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 나의 그리움도 조금은 가벼워지고,

슬픔도 조금은 온화해진다.

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붉게 물든 단풍, 노랗게 빛나는 낙엽 사이에서

나는 다시 아버지의 충만한 사랑을 느낀다.

그 사랑은 말없이 내 마음을 감싸고,

지난 시간의 외로움과 아픔을 조용히 어루만진다.

한 해의 끝자락, 가을빛 속에서

아버지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며,

조용하지만 깊이 사랑하고 계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단풍과 낙엽 속을 걷는다.

아버지가 남기신 사랑을 발걸음마다 느끼며,

나무들이 흘리는 치유의 숨결 속에서

조용히 울고, 미소 지으며,

그 사랑을 마음에 담는다.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아버지의 따스한 웃음과 손길이 스쳐 지나가는 듯 느껴진다.

슬픔과 그리움 속에서도,

나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는다.

단풍처럼 짧고 찬란했던 순간들이,

오늘의 나를 지켜준 축복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음 한편에서,

나는 아버지께 속삭인다.

“사랑해요, 고마웠어요, 이제 편안하세요.”

가을빛 속에서, 그 말은 바람이 되어

아버지에게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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