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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치즈 Oct 27. 2024

조용한 가을 예찬

요즘 어떤 드라마 봐요?

학교 이벤트로 마주하게 된 엄마들. 일상적인 대화의 소재들로 친목의 분위기가 다져진다. 엄마들 사이에서 나오는 드라마 이야기를 귓동냥하며 요즘 트렌드가 어떤지 가늠해 본다. 유행하는 드라마와 남주 이야기에 금세 화기애애해지는 분위기. 평상시 TV는커녕 노래도 거의 듣지 않는 편이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호응을 한다. 간간히 네이버에 들어가 드라마 제목을 쳐보고 새로운 인기 연기자 얼굴을 머릿속에 인지시킨다. 

요즘 OO  노래 너무 좋더라고요. 가을에 딱이에요. 들어봤어요?

노래로 소재가 옮겨갔다. 혹자는 일할 때 노래 및 경음악들을 들으면 집중이 잘 된다는데 나에겐 몰입에 방해만 될 뿐이다. 오히려 집중을 하다 보면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게 되니 틀어놓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산책 자주 하신다면서 그때 음악 안 들어요? 아무것도 안 들으면 조금 지루하지 않아요?

별로 듣는 노래들이 없다 하니 한 분이 신기한 듯 물어본다. 과거에는 오디오 북을 즐겨 듣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니 아무것도 안 듣고 다닌 지 꽤 됐다. 이번에도 내 의견은 살짝 다수의 것에서 빗겨 난 듯싶다. 몇 시간의 수다로 피로감이 몰려올 즈음 일 핑계를 대고 적절한 타이밍에 탈출 성공. 

조용한 집에 들어서자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이젠 힐링의 시간.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정적의 공간이야말로 나에겐 안락하고도 따뜻한 공간이다. 조용함과 만나면 마음의 물결이 잔잔해지면서 평온해지는 느낌. 친하지도 않은 다른 이들의 말을 듣기 위해 억지로 열어놨던 모든 감각들 속 긴장감이 사라진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과 동시에 스트레스는 사라지고 새로운 기운이 들어와 채워진다. 

10여분 지나자 서서히 들리게 되는 주변의 소리들. 창문 너머의 새소리부터 바람소리, 옆 집 뒷마당에 나온 아이들의 소리, 그리고 저 멀리에서부터 아득히 들려오는 기차 소리까지. 여태껏 막혀있었던 또 다른 감각의 문들이 자연스럽게 열리게 된다. 

이때부터는 정적이 선사해 주는 경청의 시간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소리는 신경을 예민하고 날카롭게 만든다. 그러나 이 같은 자연의 소리는 들으면 들을수록 눈과 귀, 마음까지 순해지는 느낌이다. 

뒷마당으로 나가 벤치에 앉아본다.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까지 가미된 요즘.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조금 더 침묵의 시간을 오래가져 본다. 

“아들, 나와서 낙엽이 바람에 굴러가는 소리 들어봐”

엄마 찾으러 뒷마당에 나온 아들. 함께 낮아 잠시 귀를 열고 정적의 시간을 갖는다. 이후, 바람 따라 날리는 낙엽을 잡으러 뛰어다니는 아들. 낙엽을 힘주어 잡을 때마다 부스러지는 소리에 귓잔등이 간지럽다. 

정적 속에서 마음의 평온함을 찾고 모든 감각을 열어 자연 속 가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이 순간, 가을 예찬을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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