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en Talk] 사춘기 아이와의 대화법

엄마의 마음가짐

by 봄치즈


“웃는 낯에 어찌 화내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남에게 베푼 만큼 돌아온다."


옛말에 틀린 것이 없다고 하지만, 사춘기 아이 앞에서만큼은 그 어떤 옛말도 통하지 않는다. 늘 '말을 예쁘게 한다'는 얘기를 들어왔고, 누군가와 대화하며 불쾌한 반응을 마주한 적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이가 13살이 되면서부터는 아무리 부드럽게 말해도 돌아오는 건 차가운 시선과 날 선 대답뿐이다.


"오늘날이 너무 덥네. 90도까지 올라간다네."


"오, 정말요? 알렉사! 오늘 제일 높은 기온이 몇 도야? 104도! 엄마, 오늘 찬물 많이 가져가야겠어요.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겠는데요."


아직은 사춘기와 거리가 먼, 여전히 살가운 둘째는 쫑알쫑알 내 말에 백 마디 화답하기 바쁘다. 둘째보다 더한 수다쟁이였던 딸아이는 내 말을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졸린 눈으로 시큰둥하게 앉아 밥을 먹다가 옆에 있는 책을 펼쳐 들고 읽기 시작한다. 오늘 아침도 저기압인 듯하다. 보통 이럴 때 잘못 말하면 칼날 섞인 말이 부메랑처럼 돌아오기 일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슬쩍 한 번 더 물어본다.


"오늘 너무 덥겠다, 그렇지?"


역시나 돌아온 건 쌀쌀한 답변.


"응, 들었어요. 나 책 좀 읽을게요."


말 걸지 말고 조용히 하라는 뜻이다.


그 순간 둘째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대고 입모양만으로 소리 없이 나에게 말한다.


"쉿! 누나 또 스트레스 있나 봐."


딸아이 주변에 쳐진 얼음 철벽. 이후부터는 아예 말을 걸지 않는 게 상책이다. 괜히 더 다정하게 해야지 하고 말 건넸다가 더 날카로운 칼날 같은 반응에 상처까지 받을 수 있다.


나의 사춘기는 있는 듯 없는 듯했다. 물론 입시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누군가에게 매번 내 마음을 다 표현하기보다는 혼자 조용히 시간을 가지며 푸는 편이었다. 고로 '지극히 정상적(?)'이라 말하는 이 아이의 사춘기 반응들이 유독 유난스럽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나아가 자신의 기분이 짜증스럽다고 부정적인 표정, 말투로 다른 사람에게 까지 자기 무드를 표현하는 것 또한 매우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해해 보려 노력했지만, 곧 그 노력을 접었다. 이해하기에는 나와 너무 달랐다. 대신 이 시기의 아이를 '화성에서 온 외계인'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굳이 내 논리로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정체를 파헤치려고 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받아들이기. 어차피 내가 말을 걸어도 못 알아들으니 먼저 말을 걸지 않기. 하지만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면 무슨 말인지 몰라도 그대로 반갑게 수용해 주기. 이러한 마음으로 되도록 아이가 기분 좋게 먼저 대화를 건넬 때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아이가 조증이거나 편안한 기분일 때는 생각보다 대화의 주고받음이 훨씬 오래가기도 한다. 그때만큼 음 외계인 가면을 벗고 사랑스러웠던 예전 딸아이의 모습이다.


"엄마, 내 친구 ○○ 알죠? 걔가 글쎄 오늘 어떤 우스운 행동을 했냐면…."


오늘이 그날이었다. 차에 타자마자 속사포처럼 하루 있었던 일을 기분 좋게 이야기하는 딸.


"오 정말?" "그랬구나." 열심히 호응하며 최대한 부드럽게 아이의 말을 받아준다. 한참 깔깔거리며 즐거워하던 딸이 갑자기 '피곤하니 잠깐 잘게요'라고 하더니 다시 외계인 모드로 돌아가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혔다. 아이가 원하지 않을 때는 되도록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궁금한 게 있어도 아이 쪽에서 기분 좋게 다가와 말을 걸어올 때를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여전히 미스터리 한 이 외계 소녀와의 동거는 나에게 쉽지 않다. 덕분에 매 순간 매의 눈으로 아이의 상태를 간파하는 실력이 상승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긴장감에 피곤한 날도 있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걸 안다. 단지 작은 바람이 있다면 사춘기 기간, 아이에게 ‘이유 없이 기분 나쁜 날’보다는 ‘왠지 모르게 기분 좋은 날’들이 많기를. 가끔씩 예기치 않게 칼날을 담은 아이의 날카로운 대답을 받았을 때 그러려니 하며 더욱더 담담해질 수 있도록, 나의 내공 또한 넓어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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