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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Dec 05. 2019

외줄 타기. 프리랜서의 불안함

12월은 정산의 달



불을 끄고 노래마저 틀지 않으면 허공에 떠도는 생각이 나를 잡아먹을 것 같다. 일부러 밝은 곳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시끌벅적하게 보내기 위해 애쓰는 12월이다. 그런 노력 덕분에 불안함은 살짝 사라지는 듯 보이지만, 결국 현실로 돌아오면 회피할 수 없을 직시하게 된다.


친구에게 손을 내밀기가 어렵다. 자기 걱정을 술술 내뱉는 친구에게 내 고민을 꺼내는 순간 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분명 고민을 꺼내 든 건 나인데 그 이야기가, 그 따뜻한 위로가 나는 듣고 싶지 않다. 얼마나 이기적인 마음일까. 그저 들어주기만 바라니.


12월은 프리랜서로 한 해를 돌아보기 좋은 계절이다. 한 해동안 감사했던 분들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연말이라는 핑계를 대고, 감사하다는 말속에 내년에도 찾아달라는 부탁을 숨겼다.


그간 술술 일이 들어왔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혼자서 헤쳐나갔다. 그런데 이곳은 바다가 아니라 외줄 타기였다. 주렁주렁 달린 일들이, 싹둑 잘려나간다. 나는 바닥으로 똑 떨어다.


나의 하락은 하나의 컴플레인에서 시작되었다.  충격이었다. 그 일로 오래 일한 번역 회사에서 이제 더이상 일을 받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그사이에 다른 번역 회사에선 고맙다며 칭찬을 들었지만,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그나마의 위로일 뿐 기분은 아래로 하락했다.


번역이란 게 그렇다. 너무 직역하면 구글 번역을 사용했냐 핀잔을 듣고, 너무 의역하면 처음 내용과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 오역의 오해도 받을 수 있다. 같은 문장이라도 앞뒤 문맥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게 번역이다. 같은 단어라도 어디에 쓰였는지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게 번역이다.


머리가 복잡한 시기에 여행 칼럼 수정 요청이 들어왔다. 저번 글처럼 동적이게 써달라는 요청이다.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사진에 내용도 너무 정적이라는 거다. 다시 수정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 시기에 수정 요청이 들어오니 기분이 다운되었다. 근래 들어 한 번도 수정 요청을 받아보지 않았던 칼럼이었는데.


여행기를 쓸 때 내 생각을 완전히 배제하고 사실만 쓰라고 요청하는 잡지사가 있다. 그래서 최대한 내 생각은 배제했는데, 그러다 보니 내용이 너무 정적으로 변한 거다. 아..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그리고 원고료가 센, 새로운 일이 들어왔는데,  원고료가 센 만큼 요구 사항이 많다. 당신이 해보소! 당당하게 말하고 싶지만..  원고료가 세다. 그럴 땐 꾹 참아야 한다. 계약까지 쓴 상태다. 더 꾹 참아야 한다. 지금 나의 불안은 줄줄이 사탕이다. 모든 일들의 불만이 목까지 차올랐다. 하나만 더 쌓이면 넘치고 넘쳐서 터질 것만 같다.


게다가 올해 했던 시민기자, 서포터즈, 명예기자 등의 활동이 12월을 기준으로 모두 종료다. 내년에도 계속 활동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런저런 일들이 쌓여 불안한 마음이 커졌다.


그렇다고 나쁜 소식만 있는 건 아니다. 한 달 사이 공모전 네 곳에서 수상을 하면서 꽤 많은 상금도 받았다. 그럼 이제 자존감도 높아져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내 모든 것이 운으로만 느껴진다. 한 번에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 모래. 위태롭게 서 있는 외줄.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라야 불안하지 않을까. 프리랜서는 언제 일이 몰아칠지 모르지만, 또 언제 일이 뚝 끊길지 모르는 위치에 있다. 적어도 계약기간이나 활동기간 안에는 안심이지만, 그 뒤엔 확실 않다.


불안함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일넘쳐나는데 불안함은 사라지지 않다.


결국 나는 누군가와 대체될 수 없을 만큼의 실력을 쌓아야 한다. 실수해도 된다고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가면 실수는 생계와 연결되어 있다. 불안하지 않을 만큼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지 않을 만큼 일을 잘해야 하는 게 해답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일을 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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