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아이를 낳고 여자는 육아휴직을 신청한다. 그러다 눈치 보고 쫓겨나듯 회사를 나오거나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어 스스로 나오거나 둘 중 하나다. 물론 버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한다.
내가 다니던 회사엔 소리가 시끄러운 실험기를 모아둔 작은 골방이 있었다. 마침 테스트 하나를 걸어두어야 해서 혼자 그 골방에 들어갔는데, 경리 언니가 혼자 울고 있었다. 평소엔 깔랑깔랑한 목소리로 언제나 당찬 보인 언니였기에 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쭈볏쭈볏. 살가운 성격이 아닌 데다 그다지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른 척 테스트만 걸어두고 나오려는데 언니가 나에게 말을 건다.
힘들다고.
아이가 요즘 들어 자주 아파서 반차를 써야 하는데 이런 일이 빈번하니 눈치도 보이고, 아이에게도 미안하다고. 어릴 때부터 유아원에 맡겨서 면역력이 약해지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 아이가 감기 걸리면 옆에 아이도 같이 감기에 걸리니 어쩔 수 없이 면역력이 약해지는데 그게 다 자기 탓 같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그다지 친하지 않은 나에게 울분을 토해내듯 뱉어냈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나로선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마음은 얼추 알 것 같았다. 일하는 엄마는 회사에게도, 아이에게도 미안한 거구나.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엄마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그때는 그 정도로만 생각했다. 공감은 가지만, 내 일은 아니니 그 정도로만. 하지만 그 언니의 나이쯤이 되니 그 일이 자꾸 떠오른다. 그때 그 언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는 소중한 존재지만, 한동안 엄마의 발과 손을 묶어두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시대가 조금씩 변해서 회사에서 지원을 많이 해준다고 하지만, 그래도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몇 년 경력이 단절되면, 이제 아이도 컸고 나도 사회에 나갈 준비가 되었을 무렵이면 받아주는 곳이 없다. 그래서 힘들어도 붙잡고 있는 거다. 경력단절을 막기 위해.
그렇다면 프리랜서는 어떨까. 그간 이래저래 일적으로 만난 인맥들은 어중간하게 유지해오고 있다. 그런데 이게 어중간하다. 아이를 낳고 일 년 쉰 다음에 돌아온다면 내 자리가 남아있을까. 나보다 일 잘하고 게다가 돈도 적게 받는 프리랜서는 차고 넘쳤다. 한동안 내 대체 자리를 찾느라 고생하겠지만, 그 자리는 금방 대체된다. 대체되면 어느 순간 잊힐 것이다. 어중간한 인맥은 더 빨리 잊힌다.
혹은 일 년 뒤에 내 자리가 아직 남아있다고 가정해보자. 그간 쌓은 노하우가 남아있으니 금방 다시 일감을 얻을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고 해서 육아를 완전히 손 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엄마의 손길이 그나마 줄어든 시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1년은 너무 짧다.
이것이 지금 나의 두려움이다. 다시 돌아온다고 해서 다시 헤쳐나갈 벽도 두렵지만, 그 시기가 길어지는 것도 두렵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두 배로 더 열심히 해서 더 튼튼한 뿌리를 만드는 것밖에.
대학교에 가기 전까지는 대학교가 내 목표이자 풀어야 할 숙제였고, 취업하기 전까지는 취업이 내 목표이자 숙제였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프리랜서로 얼추 자리를 잡아가니 주변에서 결혼하라고 성화다. 다행히 오랜 사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적당한 시기에 결혼을 했더니 이제는 내 나이가 노산이라며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숙제를 던져준다. 이놈의 숙제는 언제까지 풀어야 하는지.
그런데 아기가 내 결심이 아니라 그저 풀어야 할 숙제인 건 좀 슬프다. 프리랜서도 육아 휴직이 가능할까. 그건 내가 이때까지 어떻게 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떻게 일감을 받는지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는 것.
시대가 바뀌어, 추세가 바뀌어, 내 방식이 너무 구식이 되더라도 흐름을 꾸준히 공부한다면 금방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육아휴직 제도를 대체해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