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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Dec 12. 2019

프리랜서와 날씨

프리랜서는 날씨에 영향을 받을까? 받지 않을까?



새치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뿌리 염색을 하러 집 앞 미용실에 간다. 늘 바쁜 시기 때 말고 일이 없는 비수기나, 오후 내내 문서 작업을 해야 하는 그런 날을 골라 미용실을 예약한다. 집에서 작업하는 날이 많을 경우 창문 속 하늘이 오늘 날씨의 전부다. 온도가 어떤지 바람의 세기는 어떤지 알 수 없다. 그건 참 행운이다. 더울 때 시원한 곳에서 일하고, 추울 때 따뜻한 곳에서 일하는 것. 하지만 늘 그렇지만은 않다. 알다시피 나는 번역가이자 여행 칼럼니스트이기에 여행할 때 날씨의 영향을 지독하게 받는 게 이 일의 특성이다.


어찌 되었용실에 도착하면 미용사는 늘 같은 인사로 이야기의 포문을 연다. '오늘 날씨 너무 춥지 않아요?' 혹은 '많이 덥죠?'  봄과 가을에도 인사는 같다. '오늘 날씨 참 좋죠?' 어색함을 깨기 위한 이야기의 포문이다. 첫 만남에 가장 하기 좋은 얘기도 그거다. 날씨! 정치 얘기는 너무 민감한 주제고, 다른 주제도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얘기 날씨만한게 있을까!


날씨. 번역가는 그다지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실내에서 하는 일이기에 오히려 비 오는 날이 더 좋다. 그런 날엔 작업이 잘 되는 편이다. 맑은 날에는 엉덩이가 들썩여서 집중이 되지 않는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타블로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저는 비 오는 날 작업이 잘 돼요. 늘 커튼을 닫고 살아서 낮인지 밤인지 모르고 사는데, 어느 날 눈 떴는데 빗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그날 작업이 너무 잘 됐는데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아닌 거예요. 창문 청소하느라 나는 소리를 로 착각한 거죠." 피식 웃음이 나면서공감이 됐다. 나도 그런 적이 있기에.


날씨. 얼마 전 미용사인 친한 동생이 일을 그만뒀다. "미용실에서 일하는 내내 철창 없는 감옥 같았어요. 날씨는 너무 좋은데, 게다가 한 발짝만 나가면 바깥인데 하루 종일 나가지 못하고 일하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이건 미용사에게만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회사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번역할 때 비 오는 걸 좋아하는 이유도 같은 이유다. 빗소리가 좋기도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비가 온다는 못된 심보,  나만 일하는 거 아니라는 그런 심보. 날씨가 퇴사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은 좋을까. 날씨를 맘껏 즐길 수 있으니깐? 아니다. 더울 땐 덥고 추울 땐 추운 건 힘다. 이번에는 여행칼럼에 대한 얘기다.


마감이 다음 주 월요일이니 주말엔 반드시 취재를 가야 했다. 그런데 태풍이 온단다. 어쩌지.


여름 내내 태풍으로 취재 일정이 꼬였고 난 기필코 그날 취재를 가야 했다. 일기예보엔 오전 11시부터 비. 그래서 해도 뜨지 않은 새벽부터 바리바리 나가서 비몽사몽 취재를 마쳤다. 다행히 일기예보대로 11시에 비가 왔다. 정말 과학이 많이 발달했구나, 새삼 감탄했던 경험이다. 그저 여행이라면 비와도 상관없이 즐기는 스타일인데 이게 일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비 오는 날 사진은 엉망니깐.


그뿐만 아니다. 격한 날씨엔 몸 관리도 힘들다. 프로라면 몸 관리도 잘해야 하나 비상 문자가 오는 그런 날, 그러니깐 더위 먹을 것 같은 날에도 취재를 다녔고, 독감 걸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추운 날에도 취재를 다녔다. 감기가 걸려 머리가 아픈데도 다녔다.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은 그러니 힘들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다. 하지만 봄과 가을은 너무도 짧다. 그리고 점점 더 짧아지고 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좋을까. 밖에서 일하는 게 좋을까. 그러고 보니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엄마가 살짝 부럽기도 하다. 차 안이니 실내라고 말해도 좋고, 이곳저곳을 다니니 실외라고 말해도 좋으니.


날이 좋은 봄과 가을엔 번역도 성수기다. 여행하기 힘든 뜨거운 여름과 추운 겨울엔 여행 칼럼 쓸 일이 많다. 어렵다. 이놈의 날씨!


여행 칼럼 쓰느라 추운 날 취재를 갔더니 독하게 감기에 걸렸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번역 마감이 코 앞이다. 머리가 아프고, 감기약 덕분에 잠이 쏠쏠 오는데 마감이 코앞이니 꾸역꾸역 일을 한다. 리랜서라 프리 해서 부럽다 하는데, 프리랜서도 프리 하지 않고, 프리랜서도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


러니 모두 힘내자!  놈의 날씨. 더워도 문제고 추워도 문제다. 내내 봄과 가을 같았으면 좋겠는데, 또 그렇다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문제다.


그러니 일하는 누구나 날씨에 영향을 받는다. 좋든 싫든 긍정적인 영향이든 부정적인 영향이든! 이 말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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