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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Mar 04. 2020

프리랜서와 마감, 번역사의 고민

무리한 일정의 번역 납기, 하지만 거절할 수 있는 방법



"그건..  너무 촉박한데요.."

네, 그럼 다른 번역사님에게 의뢰하겠습니다.


누가 봐도 무리한 일정이다.

주말 반납하는 건 물론이고, 밤낮없이 일해야 소화할 수 있는 분량.


하지만 번역 회사는 당당하다.

그렇게 무리한 일정,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너 말고 할 사람 많다는 식이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경쟁 시대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 아니다.

고개 조금 돌려도 나보다 잘하는 인 차고 넘다.


돈을 깎아도 네네, 일정을 무리하게 줘도 네네,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도 네네.

을이 그렇죠. 뭐.


악순환의 고리는 어디서부터 시작 걸까.

이 일을 받지 않으면 이제 다른 일을 주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 혹은 갓 시작한 뭘 모르는 비기너들, 혹은 당장의 돈보단 경험 삼아 일한다는 마음들, 거기에서 시작된 건 아닐까.


"불가능하다면 혹시 10일까지는 안될까요?

의뢰인에게 양해를 부탁드려보겠습니다."


아무래도 대체 번역사를 찾지 못한 모양이다.

다음 날이 돼서야 메일, 문자, 전화가 난리다.

이미 배는 떠났다. 뱃고동 소리를 못 들었나 보지?


사실 얄미운 마음이 들어 한 번 당해봐라으로 밀쳐내는 건 아니다. 진짜 배는 떠다.

그 일을 못 받았으니 나에게 맞는 다른 일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도 팽팽 놀며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이 일은 마감도 넉넉, 대우도 꽤 괜찮다.

똥차 지나가고 벤츠 온다더니!


"죄송합니다. 다른 번역을 받아서요.

진행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늘 이런 식으로 통쾌하게 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번역 회사가 다시 나를 찾아오기 전까지

여전히 일도 없고 불안감이 엄습해온다면

나는 또 흔들려, '그래. 무리하더라도 이 일을 받자.'는 마음이 생길테니깐.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 수 있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에 걸맞게 진짜 '프리'해지려면

의뢰인이 나를 여러 대안 중 하나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들어오는 일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다.


톱스타들이 드라마나 영화 하나 끝내 놓고

쉬면서 다음 작품을 '고르는 것'처럼.

수없이 많은 오디션을 준비하고, 떨어지고, 또 준비하던 신인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쉬면서 차기작 구상이라니.

꿈만 같은 일이다.



이 일을 포기하지 않은 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다양한 일을 병행하는 것.

지금 내가 그렇다. 번역을 하지 않는 시간엔 시민기자나 여행 칼럼니스트 활동을 하며 취재를 나가고 글을 쓴다. 틈틈이 공모전에 작품 출품해서 상을 타고, 취미로 미술과 유튜브를 한다.


취미 또한 언젠가 나의 대체 일이 될 수 있길 바라면서 취미조차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둘째는 버티는 것이다. 존버가 답이다.

하지만 그냥 버다고 해서 알아주는 사람 하나도 없다. 버티는 동안 몸은 부지런해야 한다.


나의 포트폴리오를 꾸준히 업그레이드를 하고, 관련 공부도 꾸준히 하면서 나의 이력서를 이곳저곳에 뿌린다. 뿌릴 수 있는 곳은 다 뿌린다.

이러다 개인정보 털리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될 정도로 리면 일이 몇 개월 뒤에 뜬금없이  다.


그것도 일이 줄어든 비수기에.


"다른 번역사분 찾아보세요.

그렇게 무리한 일정, 열정 페이에 지나지 않는 번역료, 그리고 언제든지 대체 번역사가 있다는 마인드.


저도 싫습니다. 저도 할 일 많은데 굳이 왜 그 일을?"


오늘도 마음만은 내가 갑이다.

일 잘하는 갑.

나를 대신할 대체 인력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갑.



.... 그런 갑이 되기 위해 오는도 '을'은 열심히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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