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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Mar 06. 2020

번역가와 단어 선택

작성자의 의도




단어 하나가 내 발목을 잡아, 문장을 아리까리하게 만들더니 문맥을 다 흐려놓는다. 이 산을 넘어야 다음 스텝이 좀 더 순조롭게 흘러갈 수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린다.


번역에선 흔한 일이다.

옆 사람의 의도도 모르는 둔한 곰이

작성자의 의도를 파헤쳐야 한다니!


단어 하나하나를 다시 뜯어보고 맛보고 파악하며

머리를 쥐어짠다.

단어 하나 여러 뜻이 포함되어 있다면

나무만 봐서는 헤쳐나갈 수 없다.


숲을 바라보며 읽고, 또 읽고 머리를 굴려본다. 퍼즐 조각처럼 단어 뜻을 하나하나 끼워 맞춰 본다.


아!


순간 머리에 스친 단어와 문장.

그래, 이런 뜻이었어!


우습지만 번역의 쾌감은 여기에서 온다.

퍼즐 조각처럼 흩어진 단어들을 모아

우리 정서에 맞게 문장을 만들고 문맥을 만들어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것을 흔히 의역이라고 한다.

단어 하나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그냥 스리슬쩍, 비슷한 단어를 선택해

번역하면 안 되냐고 하는데

읽다 보면 마치 방지턱처럼 그 단어에서 자꾸 멈추게 된다. 자꾸 거슬린다. 목 뒤에 나를 괴롭히는 새로 산 옷의 태그처럼 자꾸 신경 쓰이고 간지럽다.


물이 흐르다 엉뚱한 시점에 뚝 끊긴 느낌이다.

다시 물은 자연스럽게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야 한다.


"혜민 씨. 내가 이해 못한 글은 독자도 이해 못해요.

이 글만 봐도 그래요.


혜민 씨가 어디에서 막혔는지, 어디서 이해 못하고 스리슬쩍 넘겼는지 단번에 알 수 있어요.


그러니 막힐 땐 큰 소리로 읽어보고, 또 읽어보세요.

그리고 최대한 작성자의 의도를 이해해보세요. 그럼 보일 거예요."

 

출판사 사장님이 나에게 한 조언이다.



단어 하나의 힘이 이렇게나 크구나.

그 단어가 속한 문장, 그 단어가 속한 문맥,

그 단어가 속한 하나의 이야기를 뒤흔들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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