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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Mar 08. 2020

프리랜서와 명함, 그리고 소속감

나에게 명함이 생겼다.


회사 다닐 때도 그다지 내 명함에 관심이 없었다.
거래처 직원이 인사와 함께 명함을 건네면,
그저 멀뚱멀뚱 서있기 뭐 하니깐 민망해진 손을 대신해, 나조차도 그다지 관심 없는 내 명함을 건네곤 했었다.

그 명함에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프리랜서가 된 후, 나는 명함을 소유하고 싶었다.

나를 대표할 회사가 없으니,
나를 표출할 수단도 없었다.
혹여나 처음 보는 사람이 명함을 건네면
나는 멀뚱멀뚱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민망해진 손은 몸 둘 바를 몰랐다.
물론 명함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회사와 계약을 체결한 후 일을 진행한다고 해서
회사가 프리랜서에게, 혹은 아르바이트생에게
명함을 만들어주진 않는다.

그럼에도 명함을 제작해 주는 곳도 있었다.
내 이름이 콕 박혀 있는 내 명함이지만,
내 명함 같지 않은 명함.

왜 그런 것일까. 거기에는 진짜 나를 대표할 수 있는 대표성이 부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그곳에 머무는 프리랜서이니,
혹여 그곳과의 계약이 끝나면 폐기해야 하는 명함이다.

그렇다면 그 명함의 주인은 누구인가.
나의 이름만 박혀있을 뿐 누구에게 건넬 수도 없었던 명함. 서랍 속에 콕 박아둘 수밖에 없었던 먼지 쌓인 그 명함.





그런데 이 명함은 진짜 주인이 나인 것 같다.

나의 개인 번호, 나의 메일 주소와 나의 블로그 주소.

이건 아마도 당분간은, 어쩌면 근 10년 이내엔
변하지 않았던 나의 정보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중앙에는 나의 블로그 별명이 떡하니 박혀있다.
게다가 명함에 적힌 대로 검색창에 @봄비를
검색하면 내가 나온다.


이런 소속감을 주는 명함을 제작해 선물로 주다니.

감사할 따름이다.


아무 곳에나 뿌려
누군가의 지갑에 꽂혀있다
흐물흐물해지고 글자도 벗겨지고
그러다가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소중히 여겨줄 애정 가득한
누군가의 지갑에 쏙 들어가
최대한 오래 머물다,
가끔 떠오르
필요에 따라 연락할 수 있는
그렇게 쓸모 있는 네임카드가 될 것 같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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