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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단풍 May 28. 2024

불면

A씨 이야기

육아라는 것은 분명 고된 일이 분명했다. 하지만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도 분명했다. 그것은 A씨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짜릿한 경험이었다. 아이가 자신을 보고 웃어줄 때는 물론이요, 자신의 품을 찾아서 꼼지락거릴 때, 자신의 품 안에서 그릉거리다가 잠들 때, 손가락을 내밀면 그 작은 손으로 맞잡아 줄 때.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처음 느껴보는 행복감이 A씨의 삶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아이가 밤에 통잠을 자기 시작하자 A씨와 아내의 일과도 규칙적으로 변했다. 아이를 재운 다음에는 각자 설거지와 청소 등 집안일을 하고, 다음 날 아이가 먹을 음식을 미리 손질해 놓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 씻고 잘 준비를 한 다음 쉬는 시간을 갖는 것. 소파에 서로 어깨를 맞대고 앉아서 쉬는 그 시간이, A씨 아내가 그토록 행복하다고 하는 시간이었다.     


“고생했어.”

“당신이 고생했지.”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주무르며 서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야기했다. 때로는 A씨의 아내가 육아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토로했고, 때로는 A씨가 팀장과 회사에 대해 토로했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마다 듣는 사람은 이야기하는 사람의 등을 토닥여줬고, 이야기하던 사람은 머쓱해하며 듣는 사람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것이다.      


“오늘은 소파 잡고 일어나려고 하는 거 있지?”

“진짜로? 벌써?”

“그렇다니까. 지금도 보행기 타면 막 걸으려고 발을 구른다니까? 그나저나, 부장은 오늘 어땠어?”

“똑같지 뭐. 아니, 자기는 집이 머니까 늦어도 이해해 달라면서, 점심시간에 5분 정도 늦었다고 사람을 쥐 잡듯 잡더라고. 시간을 지키래, 나보고.”

“이상해, 정말. 아니 그럼 솔선수범 보여줄 생각을 해야지, 자기는 늦어도 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서로의 입장에서 공감해 주는 시간. 아이가 조용히 잠든 늦은 밤, 서로 어깨를 기대고 앉아 나누는 그 시간만으로도 A씨와 아내는 잠시나마 하루 동안의 피로를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여유가 생긴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드디어 월급이 삼백만 원이 넘었어.”     


전환이 확정된 이후 처음 들어온 월급을 보여주자 A씨의 아내는 그를 몇 번이고 끌어안았다. 사실 육아까지 생각하면 많은 금액은 아니었으나, 지난 삼 년간 이백만 원 전후의 금액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감격할만한 액수였다.     


“당신이 열심히 산 덕분이야.”

“아니지, 당신이 날 믿어준 덕분이지.”     


딸이 코를 골면서 잠든 사이 A씨와 아내는 그러고 몇 분을 서로 끌어안고 있었다. 일단 전환이 된 다음에는 아내의 표정도 눈에 띄게 밝아졌다. A씨 역시 지난 몇 년 동안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A씨는 잠에서 깨곤 했다. 가슴을 옥죄던 죄책감과 자책감, 그리고 부족한 월급에 대한 걱정이 해소되었음에도 그는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그런가 보면 그렇지도 않았고, 그저 한밤중에 눈이 저절로 떠지곤 했다. 꼭 무엇인가를 깜빡했다가 겨우 떠올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A씨는 혹시나 자신이 정말 잊어버린 일이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 일기장을 샀고, 작은 달력도 마련했다. 했던 일, 해야 하는 일을 기간별로 정리해서 매일 자기 전에 점검했음에도, 그는 한동안 저절로 새벽에 눈을 뜨며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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