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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Dec 28. 2020

죄다 옮겼지만 이사 소식은 못 옮겼다

이사일지_14일 차

이사일지 13일 차_누구냐고 물어도 답이 없다 (brunch.co.kr)





이사일지 14일 차_죄다 옮겼지만 이사 소식은 못 옮겼다



     

“얼마나 맛있으면 옛집에 무심코 시킬 만큼 성급히 클릭을 했던 걸까, 얼마나 맛있었으면…….”

“그러게. 근데 우리는 뭐 실수한 것 없겠지? 죄다 주소 옮겼겠지?”

“그럴걸?”     



내 과거만, 내 마음만 너에게 배달될 테니 누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다시 내게로 택배를 보내 줄 필요도 없다. 마음 택배는 고스란히 나에게만 몰래 도착한다. 그러니 별다른 신경은 쓸 필요가 없다, 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의 실수가 601호 너에게로 갈 채비를 마쳤다는 소식이 들린다.     


○○○ 님!

오늘 ○○○ 님이 보내신 택배가 도착합니다!

우체국 택배 ○○○     



오 마이 갓. 우리는 바로 택배기사님에게 전화를 건다. 이사를 왔어요, 그리로 가면 안 돼요. 그럼 어디로 보내 드려요? 새 주소를 말씀해 주세요. 아, 새 주소요? 네. 여기는 경기도….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택배를 그쪽 지역으로 넘길게요. 그럼 도착은?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도착할 거예요.     



내가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부모님이 심각(?)하다. 무슨 일 있어요? 자초지종을 듣고 나니 음식이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된다. 감자나 고구마 같은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생선 같은 것이면 어쩌지? (남쪽 지방에서 태어난 우리 아버지는 택배가 어류일지 모른다는 직감이 드셨나 보다.)     


우리는 상의한다. 다시 전화해서 601호 근처 경비실에 맡겨 달라고 하자! 주말까지 껴 있으니 음식이라면 상할지도 모른다. 그래, 그게 낫겠다. 옆 동네에 동생이 사니 가족 찬스를 써서 가져다 달라고 해도 되고 동생네가 바쁘면 우리가 가서 직접 찾으면 된다. 이렇게 결정을 내리고 택배 시가님께 전화를 해 보는데 토요일이라 더 바쁜가 어쩐가. 기사님이 통 전화를 안 받는다. 문자라도 칠까?     



뭐 문자까지 칠 일 있냐. 괜찮겠지, 뭐.


아부지가 갑자기 느긋한 말씀을 보태신다. 그 말씀을 듣고 보니 그게 또 그런가, 싶어 관둔다. 그래도 뭔가 조금 찜찜하다. 그리고 사흘 뒤.


띵동.     


이번에는 전 주인의 낙지젓갈이 아닌 우리의 택배다. 스티로폼이다. 망했다. 음식인가 보다. 상해서 못 먹을지도 모른다. 601호 너에게서 모든 것을 죄다 옮겨 왔는데 이사 소식만은 못 옮겼다. 친척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이사를 알리기도 뭣해서 차후로 미뤘더니 이런 사달이 난다.


상자를 열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어류다. 그중에서도 홍어. 우리 집 두 사람은 홍어를 잘 안 먹는다. 나머지 한 사람은 섬사람이다. 섬사람은 자주는 아니지만 홍어를 드신다. 보낸 이는 친척 오라버니. 작은아버지인 우리 아버지를 생각해서 홍어를 보낸 것이다. 


     

“홍어여서 오래 두고 먹어도 괜찮을 거예요.”


친척분의 말을 믿고 문밖에서 택배를 들여와 테이프를 뜯는다. 


그래도 아직 늦여름인데, 홍어가 뒤섞이게 되면, 우리의 위장, 정말 오늘밤, 별일 없이 괜찮을까?



(표지 출처: Markus Winkler@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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