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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Apr 09. 2024

이모한테 보내

휴대폰 알림이 울린다. 동생이다. 동생의 동영상이다.


쌍둥이 조카의 동영상이 이른 아침부터 가족 채팅방을 산뜻이 채운다. 조금 늙은 이모와 늙은 할머니, 더 늙은 할아버지 세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휴대폰 화면 하나를 가운데 두고 세모를 누른다. 동영상이 재생된다.


'타다다다다닫다다닥. 우다다다다닥. 휙휙휙휙.'


둘째 조카가 일을 하고 있다. 컴퓨터 앞이다. 일하는 손가락과 눈빛은 제법 진지하다.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화면은 일을 비추지 않고 오로지 둘째 조카의 바쁜 손가락과 옆얼굴만 비춘다. 사뭇 심각해 보인다. 그리고 내뱉은 작은 한마디.


"이모한테 보내."

"응?"

"이모한테 보내."

"이모한테 보내라고?"

"응. 이모한테 (동영상) 보내."



이모한테 보내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조카의 동영상에서 조카는 더욱더 전광석화의 속도로 자판을 두드린다. 어디서 봤는지 마우스를 휙휙 당기는 솜씨도 제법이다. 스트레스가 담긴 미간도 잊지 않는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어른들의 얼굴을 뒤늦게 자기 얼굴에 담아 보려는 것일까. 자기 엄마 책상 앞에 앉아서 한가롭고도 바쁘게 재택근무(일하는 척을 하는 일 놀이)를 하고 있다.



그런 둘째 조카와 나는 인연이 꽤 깊다.

동생이 쌍둥이를 낳은 덕분(?)에 내가 2.3.kg로 태어난 둘째 조카를 생후 1년 반 동안 (과장 많이 보태서) 도맡다시피 했다. 둘째 조카의 분유와 트림과 기저귀와 응가와 잠투정은 내 차지였다. 둘째 조카 생애 초기의 삶에서 나의 품은 둘째 조카 전용이었다. (첫째 조카가 제 엄마와 할머니까지 모두 자기 차지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별수 없이 둘째 조카는 꿩 대신 닭으로, 2인자인 나를 택했다.)


처음에는 내가 먼저 둘째 조카의 이름을 불렀고,

처음에는 '사랑해'와 같은 애정의 말도 이모인 내가 먼저 보냈다.


그랬던 둘째 조카가 어느덧 어깨만큼 자라다 턱만큼 자라고 코만큼 자라고 눈썹을 추격한다.

이제는 사람 몸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공연을 민속촌에서 볼 때도,

이제는 자기 몸에서 대왕문어만 한 코딱지가 나올 때도,

이제는 '바보, 멍청이'라는 글자 앞에 '이모'를 덧붙여 써 놓을 때도,

사람들에게  조카는 이리 전한다.


"이모한테 보내."


생각해 보니,

조카가 내게 보내오는 것은 단순히 레이저 동영상이, 코딱지가, 바보멍청이가 아니다.



녀석이 보내오는 것은, 다름 아닌 안부다.

"이모, 잘 잤어?(=이모, 여기 편지야. '이모, 바보 멍청이')"

"이모, 밥은 먹었어?(=이모, 나 응가 마려워.)"

"이모, 놀고 싶지?(=이모, 어서 일 내팽개치고 우리 집으로 와 줘. 같이 놀자.)"



이모는 녀석이 보내오는 모든 신호를 조카의 말들로 번역할 줄 아는 '조카 번역기'가 다 되었다. 아마 둘째 녀석이 맨 처음 자기만의 우주 언어를 처음 내게 보내왔을 때부터, 우리는 하나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 게 아닐까 싶다. 그 우주 언어는 바로...



"이모."


그때 그 초가을의 어느 밤을 기억한다. 푹신푹신한 곳에 같이 누워 자장자장 잠을 재우던 그때 그 시간을 기억한다. 녀석이 태어나 처음으로, 또 이모인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서로에게 말하고 들었던 '우리'의 그 말,


"이모오"



녀석은 내게 처음으로 '이모'라고 말해 준 사람이다.

녀석은 내게 처음으로 대놓고 '바보멍청이'라고 말해 준 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손쉽게도,

내 생애 처음으로 이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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