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인생은 희비극이 뒤섞인 '체험, 삶의 현장'
"할머니, 이모가 미안하다고만 해."
대체 이모의 전화는 언제 끝나는 거냐고, 분명히 티브이를 끄자마자 같이 놀기로 철석같이 약속하였는데 왜 아직도 수화기를 붙들고 있는 거냐고, 쌍둥이 조카 녀석의 볼멘소리가 한계치에 다다랐을 때,
"우느라 전화 못 받았어."
이건 이모 친구의 목소리.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친구의 생과 사를 확인하느라 이모인 나는 잠시 조카놀이고 뭐고 전화기만 붙든 지 40분째. 조카2는 할머니한테 '이모 전화 언제 끝나?'라고 묻다가, 직접 가서 물어보라는 할머니의 말에 이모에게 쪼르르 달려온다. 이제 제법 철이 든 나이여서 그런지 사태가 심각해 보이는 이모의 얼굴을 보고 묵음의 입 모양으로만 '언제 끝나'라고 이모에게 묻는다. 이모는 그저 미안해서,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이 사태가 진정되길 바라며 '미안해'의 입 모양만 남긴다.
미안해,를 발화함과 동시에 수화기에서도 '미안해'가 내게로 쏟아져 내린다. 친구는 걱정을 하게 해 미안하다고 내게 말한다. 너도 내 푸념을 듣는 것이 한두 번도 아니었을 테니 이젠 지쳤을 거라고, 아니 지겨워졌을 거라며 미안하다고..
"미안하면 과거형으로 문자 좀 보내지 마."
나는 친구에게 단단히 경고를 한다. 그러고는 왜 힘들었는지, 그 연유를 하나씩 듣는다. 친구의 목소리가 조금씩 잦아든다. 이 전화는 하나의 문자에서 시작했다.
봄먼지야, 사실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나 그동안 일이 좀 있었어. 미치겠어. 이젠 정말 아무 희망도 없다. 그동안 나한테 넘 애써 줬는데... (....) 당분간 연락 없더라도 걱정은 마. 고마웠어. 수고해.
자신의 단어들이 상대에게 어떤 암시로 가 닿을지도 모르는 채 자신의 문자를 과거형으로 끝맺으며 상대의 애간장을 끊는 친구.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고, 너무 힘들다는 말로 자신의 생을 기어이 과거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듯한 섬뜩한 마지막 선전포고. '고마웠어, 수고해.'
그러나 겨우 닿은 연락으로 간신히 수화기를 붙든다. '왜 전화 안 받아!' 날이 선 내 목소리가 안도의 한숨을 짓는다. 이런 이모를 앞에 두고 조카들은 난리, 또 난리다. 이모랑 놀아야 한다고, 놀아야 하는데 계속 이모가 저렇게 전화를 하고 있다고.
이모를 명왕성으로 보내 버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모가 긴박한 순간이 되자 그제야 놀자고 이모 손을 붙든다. 베란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 전화기를 붙든 이모를 따라와서는 종이를 날리고, 장난감을 이모 손에 쥐여 주고... 그러다 두 녀석이 이모를 포위하다가, 다시 자기들끼리 대책을 강구하며 새로운 전술을 짰는지 이모를 베란다에서 끄집어낸다. 이모는 다시 다른 골방으로 가 문 뒤에서 통화를 이어 간다. 수화기 속에서는 세상을 향한, 주변을 향한,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와 원망과 자책이 쏟아진다. 고스란히 그것들을 주워 담으며 어디서부터 친구의 세상이 비틀어지기 시작했는가 함께 슬퍼하고 함께 땅을 치고 함께 고개를 숙인다.
그렇게 위로에 위로를 거듭하며 다음 위로의 단어를 골몰히 찾고 있는 이모에게,
"이모 응가 마려."
절체절명의 순간이 닥친다. 이번엔 응가다. 전화를 잠시 끊을 수도 없다. 끊으면 친구가 또 무슨 나쁜 생각을 할지 몰라서 괜히 불안하다. 위로의 도중에 '미안해, 조카 응가 때문에'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화장실로 들어가 조카1에게 '쉿!'이라는 말로 묵음을 부탁한다. 조카1도 내 말을 알아들은 눈치다. 까딱 잘못하면 친구를 향한 내 위로의 진정성이 크게 의심을 받고 훼손될 처지에 놓였다. 조카1과 나는 조용히 작업을 치른다.
그러고 나서 나는 조심스럽게 세면대 위에 전화기를 올리고 스피커 폰을 켠다. 어깨에서 세면대로 내려놓은 전화기에서는 친구의 목소리가 조용히 흘러나오고, "응, 응. 그렇지. 그렇겠네."로 이어지는 나의 맞장구들은 화장실의 공명을 타고 친구에게로 흘러든다. (다행히 친구는 공간의 변화나 목소리의 파동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자신의 앞날에만 눈치를 쏟아야 할 시점이기 때문이리라.)
"이모, 다 쌌어."
나는 그렇게, 조카1의 응가를 닦아 주면서 마음과 입으로는 친구를 위로한다. (그 와중에 조카1과 내외를 해야 하다 보니, 나는 부채를 두 개나 들고서 아무것도 보지 않는 상태여야 했고, 눈도 감은 상태여야 했다. 그게 남자아이를 조카로 둔 이모의 예의이자, 조카1의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이모, 근데 계속 그 부채 뒤에서 눈 감고 있었어?"
조카1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 같아, 나는 순간 스피커폰을 해제한다. 그리고 조카에게 잽싸게 속삭인다. (나는 두 개의 대화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응. 눈 감고 있었지. 자, 거의 다 됐다. 조금만 더 닦을게."
"이모. 그럼 눈 감고 닦고 있어?"
"응?? 눈을 감..고 어떻게 닦? 어, 어.. 눈 감고 닦다가 눈 떴다가 다시 눈 감고 그래야 닦을 수 있으니까, 뭐 그렇게 하고 있어."
이렇게 전화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비극과 희극이 뒤범벅된다. 범벅이 된 40분은 내게 진땀의 순간이다. 한쪽에서는 한껏 위로하고 열심히 슬퍼했다. 그곳은 작고 어두운 말투가 필요한 곳이었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 나는 한껏 과장하고 열심히 웃어 주려 했다. 그곳은 크고 장난스러운 말투가 필요한 곳이었다. 열심히 통화를 해 보지만 내 앞에 와서 얼쩡대는 녀석들의 '공격 개시'에 이모는 속수무책이다. 위로의 와중에도 배시시 웃음이 나고 만다.
아, 녀석들이 이렇게 나를 단번에 비극에서 희극으로 몰고 간다. 이들에게 지상 최대 과제는 이모랑 노는 일뿐이다. 오로지 녀석들은 그게 아쉬울 뿐이다. 그때, 조카1과 조카2의 엄마가 도착한다. 그런데, 전화 막바지에 놓인 이모의 눈에 조카1의 '앙탈'이 보이기 시작한다. 침대에서 벌러덩 드러누우며 통곡의 눈물 바람을 하는 조카1의 생떼 현장.
"이모랑 놀지도 못했는데 엄마가 왔잖아. 헝헝..흐엉..”
자기 엄마가 도착하면 집에 바로 가야 하는 줄로만 알고, 아주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전화기에 딱 붙은 이모는, "그래, 힘내고, 다시는 과거형으로 문자 보내지 말고, 넘 힘들겠지만 잘 버텨 보자."라고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를 내뱉는다. 그러는 사이, 조카1은 침대에 뒹굴며 이모랑 무려 40분 동안이나 놀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억울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미안하면서도, 왜 이렇게 웃기고 또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귀에 남은 슬픔의 부스러기가, 녀석들의 고 귀여운 앙탈과 몸부림에 스르르 녹기 시작한다. 인생은 정말 희비극이 뒤섞인 '체험, 삶의 현장'이다.
(사진: Pixaline@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