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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May 10. 2024

너 닮은 딸이면 예뻤을 텐데

미리 얘기해 두자면 나를 닮은 어느 누군가도 결코 '관적으로는' 예쁠 수 없다.


"너 닮은 딸이면 예뻤을 텐데..."

그래도 이런 말을 듣다 보면 정말 내가 불세출의 미인을 낳을 뻔했는데 그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자의식 과잉의) 의구심은 든다.


래, 나도 아주 가끔, 궁금은 하다. 닮는다는 것은 대체  무엇이지?


아주 오래전, 우리 집이 가게를 운영할 때의 일이다. 카운터에 삼 모녀(엄마, 나, 여동생)가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그때 가게에 물건을 넣으러 왔던 아저씨가 이렇게 외쳤다.

"셋이 똑같이 생겼어요!"

당시 나와 동생은 서로 기분 나빠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나는 이렇게도 생각했다. 역시 우리가 '가족'이라서 그런가?


유전자의 힘은 어느 무엇보다도 강력한 것일까.

또,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이고?



한번은 내 사랑 쌍둥이 조카의 사진을 카톡 프로필에 올려 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아시는 분께서 "조카가 이모 닮았네!"라고 하셨다. 그때 그 말이 얼마나 듣기 좋고 몽글몽글하던지, 살아오며 들었던 말 가운데 손에 꼽힐 정도로 달콤한 말이었다. 조카도 이 정도인데 정말 내 딸이라면, 내 아들이라면? '완전 완전' 하늘을 날 정도로 마음이 두둥실하지 않을까?


그런데 '닮는다'는 게 정말 무엇일까. 이렇게 '빼도 박도 못 하는 겉모습'이 닮은꼴의 전부일까. 그 범주를 벗어나는 은꼴의 서사는 과연 없는 걸까.


타고난 것 말고도 우리는 서로 '닮은꼴'을 만들 수 있다. 살아가며 누군가와 손발을 맞추며 같이 걸어가는 일.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을 천천히 흡수하는 일. 그것이 꼭 '피'로 얽히고 얼룩져야만 하는 일은 아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물은 피보다 투명하고 맑다. 그 물은 살아가며 우리에게 다양한 길을 내준다. 살면서 어느 시절에는 단짝 친구와 '닮은꼴'이 될 수도 있고, 어느 시절에는 연인과, 다른 시간 속에서는 존경하는 누군가를 자신만의 '닮은꼴'로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다.



닮은 있으면 예쁠 텐데.


나를 예뻐하는 누군가의 안타까운 이 탄성. 그 탄성에 감탄의 느낌표를 얹어 드리지 못해 조금은 송구하다. 하지만 닮은꼴 찾기가 삶의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굳이 닮은꼴을 찾아야 한다면...?


나의 닮은꼴은 나를 닮은... 과거의 나, 지금의 나, 그리고 새로이 만날 미래의 나.


그 '나' 하나를 잘 건사하는 것으로,

'나 닮은 예쁜 나'를 스스로 만들어 가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나를 닮은 딸은 아니더라도,

'나를 닮은 좋은 세상' 하나쯤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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