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서른 즈음의 일이다. 아는 분이 갑자기 내 앞에서 자기 남동생 이야기를 꺼내셨다.
"종교도 같고 참해 보여서 내 남동생 소개해 주고 싶은데."
소싯적에 엄마와 싸우다(엄마에게 혼나다) 다듬던 양배추 부스러기까지 내던진 무시무시한 경력(?)이 있는 줄도 모르시고 묵주를 들고 있던 내 '조신함 코스프레'에 깜빡 속으신 어떤 선생님께서 무려 자신의 형제를 내게 공개하셨다.
"아, 제가 소개받고 그러는 게 좀 불편해서요."
"아, 그래도 한번 만나 보지."
"괜, 괜찮은데."
"내 동생은 아직 공부 중이야. 박사 따려고. 나이는..."
저는 제가 학사여서 박사보단 학사가 더 편한데요, 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그분께서 뒤이어 언급하신 남동생분의 나이를 듣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 당시 나보다 열 살이 더 많은 분이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젊은 줄 알고(?) 열 살 차이와의 소개팅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그 남자분의 나이를 능가하는 지금에 와서 보면, 내 나이가 다른 이를 외려 식겁하게 만들 수도 있겠는걸, 하는 웃픈 생각이 든다.)
소개해 주겠다는 말이나 미친 척하고 한번 만나 보라는 말에 '괜찮습니다'를 하도 많이 외치다 보니 이제는 내게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는 사람이 없다. 물론 물리적 나이가 많아서이기도 하다. 내 주변 사람들도 이젠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포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끔 '어쩌다 혼자'인 나를 두고 이런 말을 해 주시는 분이 있다.
눈이 너무 높아서 그런 거 아니야?
눈은 하늘에 가 있고 발은 땅바닥에 붙어 있는 내 상황을 고려하거나 배려한 질문이었으려나. 하지만 기준을 높이 설정해 놓은 것이 아니고 기준 자체를 만들어 놓지 않아서 연애에 관한 기준이 내 삶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것뿐이다.(그냥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고 많아서일수도?)
눈이 높아서가 아니라 겁의 크기가 높아서일 수도 있다. 끔찍한 인터넷 기사를 접할 때면 쉽게 사람을 믿을 수 없을 것만 같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을 보면 서울로 진입하는 일은 내 여생에서는 심히 어려울 듯하다.
이거, 내가 눈이 높은 게 아니라
세상이 눈이 높은 게 아닐까?
세상은 말한다. 사람을 만나려면 사회적인 성공과 경제적인 안정은 기본이고 인간관계의 저변까지 넓은 것이 좋겠다고. 그 어느 것 하나에 나를 끼워 맞추기 힘든 것으로 보아 세상의 눈높이에서 나는 한참이나 눈 밖에 난 처지가 아닐까 싶다. 지금 당장 내 발등 아래에는 '먹고사는 일'이 불똥처럼 떨어져 있는데 눈을 들어 사람을 물색하고 세상을 구경하며 내 짝은 어디 있나, 두리번두리번할 정신이 내겐 없다.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냐?"
"......"
묵비권이 때론 무난한 답변이 될 수도 있다.혼자 살기에도 헉헉거리는 세상이라 오늘도 숨차게 달릴 뿐이다. 나는 내 눈이 어디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오늘도 내일도 달리는 중이다.그래도 세상에 출근은 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