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실핏줄이 터졌다.
“와, 진짜요? 축하드려요!!”
뒤늦게 엄마의 친척 모임에 합류하여 차를 얻어 마시던 날. 며칠 전의 장례식 소식과 몇 달 후의 결혼식 소식이 같은 식탁 위에 뒤섞여 오르던 날. 바로 그날이었다. 축하해야 마땅한 일을 앞에 두고 엄마는 어쩐 일인지 싱숭생숭한 표정이었다. 그러다 끝내 실핏줄까지 터지고 말았다.
“이제 언니는 5월에 시집가니까, 넌 10월에 시집가면 되겠어.”
사촌언니1의 말이다.
“우리 아들이랑 진짜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야. 사람이 괜찮아. 게임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고. 가장 좋은 게 뭔지 알아? 토요일과 일요일만 일한대. 평일엔 집에 있대. 평일에 집안일도 도와줄 수 있고, 얼마나 좋아?”
사촌언니2의 말이다.
“근데 그게 더 안 좋은 거 아니에요? 왜 주말부부는 신이 내리는 거라잖아요. 평일까지 같이 붙어 있으면 안 좋을 것 같은데……. (그리고 집안일은 공동의 작업이니 서로 돕는 거지 한쪽 사람이 다른 한쪽 사람을 돕는 건 아닌 것 같고요…….)”
갑자기 ‘봄책장봄먼지 일병 구하기’가 되어 버린 우리의 티타임.
“안 그래도 네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딱 네가 왔네. 한번 만나 봐. 시어머니 자리도 진짜 괜찮고.”
응? 나 시집가? 나 언제 시어머니 생긴 거?
나보다 네 살 위인 언니가 드디어, 혹은 마침내 시집을 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건 축복을 받고 축하를 받아야 할 일. 결혼에 나이가 어디 있나 싶지만 나 역시 편견을 지닌 터라 그 언니가 갑자기 결혼 소식을 전해 온 것이 놀랍다. 문제는, 나보다 엄마가 더 예상하지 못한 소식이었다는 것.
“엄마 실핏줄 터졌어!! 빨개.”
“어디 어디?”
“눈동자를 왼쪽으로 째려봐 봐. 그래, 거기 거기.”
“네가 시집 안 간대서 그런가 보다.”
엄마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저 문장에 숨은 뜻을 나는 안다. 내가 시집 안 간대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그것도 ‘믿었던(?)’ 누군가가 시집을 간다고 해서 그렇다. 오래전 유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동갑내기 친구와 백년가약을 맺기로 했단다.
적진에 홀로 남은 아군을 바라보듯 나를 구하려는 목소리들은 내 폐부를 깊숙이 찔러 댄다. 그러나 찔리고만 있을쏘냐.
“억지로 만나는 거, 이제 안 하려고요.”
방어1 성공.
“어색해서 싫어요.”
방어2 성공.
“가족끼리 서로 잘 아는 사이라는 게 전 더 싫어요.”
아주 오래전, 아는 사람들(고모, 사촌오빠)이 나에게 사람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나랑 너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엮어 줬는데 정말 크게 엮일 뻔했다. 주변 분위기 때문에 억지로 나를 한 번 더 만난 것을 내가 오해하였고, 왜 연락이 없냐고 대뜸 물었다가 혼자 뻥 차인 시원한 흑역사도 있었다.
아는 사람이 소개하면 신뢰할 수 있다지만 그게 더 더 불편하다는 걸 이미 깨달아 버렸다.
근데 적진은 어디일까. 나 홀로 남은 이곳일까, 누군가를 만나 가정을 꾸리는 저곳일까. 나에게는 이승과 저승 사이만큼이나 멀어 보이는 ‘간극’이다.
그런데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적진’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채지? 이곳은 적진이기에 연대조차 할 수 없는 걸까? 그들은 이 ‘비혼 지대’를 비무장 지대처럼 겉으로만 평온해 보일 뿐 알고 보면 언제라도 온갖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지대라고 믿고 있는 걸까.
남편이 남의 편이 될 때도 있다던데 어떻게 가족의 규격을 4인 가족, 3인 가족 등 숫자로 규정할 수 있는가. 그 규격 안에 있으면 나의 아군이라 확신할 수 있는가. 정말 그곳은 안전한가? 정말 적진은 아닌가?
“얘가 너무 완고하네.”
오늘 무를 너무 많이 잘랐더니 좀 피로하다. 무 자르듯 하지 않으면 또 휘둘리다 낯선 남자 앞에 앉아 있기 십상이다.
나도 안다. 사랑을 하면 좋다는 것을. 바라만 보아도 따뜻해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나도 살면서 미치도록 누군가를 좋아해 봤고 600통이 넘는 편지를 써서 상대가 질리도록 마음을 전달해 보기도 했다. 그게 다 부질없다는 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나에게 귀한 감정들로 남았다. 결코 버리고 싶지 않은 ‘예쁜 쓰레기’ 같은 감정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 예쁜 쓰레기만으로 내 삶을 채우고 싶진 않다.
물론 이 비혼일지를 때려치우고 사랑에 푹 빠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무언가에 빠지면 앞뒤 재지 않는 성격이다. 예전엔 그래서 더 걱정들을 하셨는데 이젠 절대 그 수렁에 안 빠지겠다고 하니까 더 걱정들이다. 그 걱정의 온도가 제법 따뜻하다는 것도 물론 안다. 나에 대한 안타까움이 치사량에 달하신 것이다. 감사히 여겨야 함을 나도 안다.
하
지
만
“미친 척하고 만나 봐.”
미친 척?
엄마, 나 안 미쳤어.
그래서 못 만나, 아니 안 만나.
나는 그저,
내 인생에 미치고 싶을 뿐이다.
내 인생을 ‘미친 척’ 만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