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거긴 한데 이유는 궁금하네요
이 꼴 저 꼴 안 보려면 그냥 혼자 살아.
혼자 살면 혼자 외롭게 늙어 죽기 딱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결혼은 하지 말고 혼자 자유롭게 살란다. 그렇게 살 작정이었지만 문득 의구심은 든다. 건너오라는 손짓을 보내면서도 ‘절대 건널 생각 같은 건 하지도 말라’라는 그 심리는 대체 어디서 출발한 것일까. 더불어 ‘이 꼴’은 뭐고 ‘저 꼴’은 또 무엇일까.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대충 흘려들은 이야기로, 어떤 남편은 아이의 우는 소리를 참지 못해 덜컥 집을 나가 버렸다고 한다. 임신한 어떤 아내는 나도 소중한데 사람들이 자꾸 ‘아이를 생각해서’ 잘 먹고 잘 지내라고 말하니 기분이 이상해진다고 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내가 비혼이 처음이듯, 그들도 결혼이 처음이니까.
사족을 붙이자면 어쭙잖은 (이모) 육아 경력으로 1년 반가량 종종 밤낮이 바뀌어 살아보았는데 그게 사람 할 일이 아니다, 싶을 정도로 너무 고되었다. (물론 더없이 행복했다. 나의 조카들 덕분에.) 어쨌든 그들은 그렇게 고될 줄 모르고 결혼들을 했을 테고 (자식을 낳은 기혼자라면) 평생 자식이라는 끈이 연결되어 있을 테니 순간순간 덜컥 겁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때 집어먹는 ‘겁’은 혹 내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가, 라는 두려움 같은 것일까.
결혼하지 말라는 소리는 일견 무책임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너만은’ 그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마지막 단말마(?) 같은 안타까움의 비명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결혼이 다 엉망진창인 것도 아니고 죄다 탄탄대로인 것도 아니다. 그 모든 결혼은 각기 다른 ‘개별 결혼’일 뿐이다. 마치, 나 같은 비혼의 삶이 어떤 다른 비혼과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듯이.
세상에는 두 갈래, 세 갈래 이상의 길이 있다. 어떤 길은 이어지거나 혹은 다시 갈라지는 일을 반복한다. 길을 걷다 보면 한 길을 쭉 갈 수도 있고 둘이었던 길에서 셋이 되기도 한다. 또는 다시 혼자로 되돌아가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넌 결혼하지 마.”
넘쳐흐르는 충고를 듣다 보면 가끔은 얼떨떨하기도 한다. 이러라는 걸까, 저러라는 걸까. 혹시 그들도 자꾸 아리송해서 결론을 못 내린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일단은 그렇게 살던 대로 살아 보기로?
어떤 길로 가든, 어느 갈래에서 어느 쪽으로 방향을 틀든 ‘결혼하지 마’와 ‘그냥 혼자 살아’라는 명령(?)에는 휘둘릴 필요가 전혀 없다. 그게 아무리 인생 선배님들의 조언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아, 근데! 뒤집어 생각해 보면 나도 그들의 선배 아니던가? 비혼의 삶은 우리 부모님조차 겪지 않은 새로운 길이니, 때로는 비혼인 내가 뭇 기혼자들의 인생 선배님일 수도!)
“그냥 혼자 살아. 그게 속 편해.”
결혼은 안 할 것 같지만 ‘혼자’서만 살진 않을 것 같다. 물리적으로 혼자더라도 심리적으로는 이 세상과 연결된 채 살고 싶다. 그 연결 대상은 나와 마음이 통하는 세상 한둘만이더라도 충분하다.
나는 혼자서도 ‘연결’을 준비한다.
‘그냥 혼자 살아도’ 나는 당신들의 친구이다.
(사진 출처: Mohamed_hassan@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