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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May 17. 2024

너도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자, 이제 내 이야기를 좀 시작해 봐도 될까?


삼십 분 가까이 친구들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는 친구 자식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가끔 고개를 끄덕이고 가끔 창밖으로 눈을 돌려 딴 곳을 바라본다. 친구들은 나의 딴청을 대부분 눈치채지 못한다. 그들은 지금 아주 아주 중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등에 떨어진 아이들의 교육 문제는 친구들의 뇌세포를 거의 90% 가까이 잠식하고 있다. 한창 성장 중인 아이들의 미래. 얼마나 걱정이 많고 얼마나 고민이 될지 짐작은 간다. 다만 멀찍이서 해 보는 짐작이다. 나는 그저 내 코앞의 미래도 짐작하지 못한다. 


-어머, 우리가 너무 우리 이야기만 했지?

-아니야. (너희 이야기만 하진 않았던 것 같고 너희 자식들 이야기만 했던 것 같긴 해.)

-이제, 네 이야기도 좀 듣자. 네 이야기도 좀 해 봐.


특히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가 홀수(가령 세 사람)이고, 그 홀수 가운데 비혼인 내가 소수가 되면 그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대부분 내가 아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질문에 점차 '나'와 '너'가 빠지고 '너가족'들이 등장한다. 평소 과몰입을 잘하는 나지만 종종 몰입과 공감에도 한계가 있음을 느낀다. 때때로 나의 리액션은 방향을 잃고 기계음을 낸다.

'우리 이야기는 대체 언제쯤 시작되는 걸까.'


하지만 곧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된다. 친구들은 남편과 자식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나는 나의 부모님이 기다리는 집으로 향한다. 목적지는 집이지만 어쩐지 우리의 집들은 다른 분위기를 풍길 것만 같다.


우리, 많이 멀어진 걸까?

우정의 테이프를 되돌리려거나 되감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다만 아이를 키우며 남편과 부대끼거나 복닥거리며 사는 삶. 언뜻 보기에 친구들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평범'의 레벨을 재차 업그레이드하며 살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럼 나는? 이러다 나는 '평범'에서 아주 멀어지는 것일까?



"사실 그 선생이 노처녀야. 아무래도 애 낳아서 키워 본 적도 없고 혼자서만 편하게 살고 그러다 보니까 작은 일에도 발끈할 때가 있고, 쉽게 섭섭해하기도 하고, 참을성이 좀 많지 않더라고. 봄봄 선생이 이해를 좀 해."

부끄럽지만, '저러니 혼자였지'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동의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비혼이 된 나는 뒤늦게라도 황급히 고개를 젓는다.

어떤 사람의 행동은 단순히 그 사람의 '나이'나 '결혼 여부'가 그 행동을 빚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역사'와 '됨됨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특성이 그 사람의 행동을, 그리고 삶을 만드는 것이다. 그 사람이 결혼을 했느냐 안 했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혼을 해야만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지 않아야만 스스로를 잘 돌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건 그냥 각자의 삶일 뿐이다.  



-너도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말을 스치듯이라도 들을 때면, 나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직도 난 평범의 기준을 잘 모르겠다. '평범'이란 것에 꼭 기준이 필요한 것이지도 의문이다.


나는 비혼이지만 꼭 비혼에 얽매진 않는다. 그저 '육체에 깃들어 마음의 작용을 맡고 있는 비물질적인 실체', 즉 '영혼'이라는 것을 잃지 않고 그 녀석과 함께 '천천히 잘' 가고 싶다. 다시 말해 '영혼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영혼 없는 멘트로 내 인생을 응원하기는 싫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무엇을 하든 일단 '영혼'을 몰입하고 본다. 때로는 온몸이 땀 뒤범벅이 될 때까지 거리를 걷고 온 마음이 뭉개질 때까지 일기를 쓰거나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써 보기도 한다. 때로는 이대로도 좋고, 때로는 이대로여도 될까 망설인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내 비혼의 하루하루를 쌓아 간다.


나는 그냥 '지금의 내 삶'을 온전히 '내 삶'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이 나에게는 평범한 삶이다.



기혼, 미혼, 비혼, 그리고 영혼.

어떤 글자로 시작하는 '혼()'이든 간에 그 안에는 모두 '영혼'이 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꾸준히 돌보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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