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은 진즉에 다 결혼해 버렸다는 속설 아닌 속설로 비혼의 종말을 재난영화 예고편으로 만드는 목소리들. 지금이라도 '본류'에 합류하면 '지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 고문인지 절망 고문인지 알 수 없는 고문으로 내 현재의 삶을, 혹은 내 과거의 삶들을 사뿐히 부정해 주시는 거룩한 손길과 발길 들.
<뒤늦게라도 만나서 결혼하면 좋잖아>
지금까지도 안 만나거나 못 만났는데 어느 세월에 만나고 정들고 연애하고 결혼까지? 생각만 해도 아득하다. 나는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비혼을 때리는 말들'을 담장 밖으로 던져 놓는다. 그러면 내 주위 사람들은 내게 이렇게 말하겠지. 늦지 않았어. 시작이 반이야!
그러나...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 혹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다'라는 격언의 뒤통수를 치는 모 개그맨의 명언이 또 있지 않던가.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거다."
물론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늦은 때라는 것도 없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자면 '비혼'에도 나이도 국경도 늦은 때라는 것도 없다. 자, 기혼자 여러분들..
<야, 너도 할 수 있어!>
언제든 이쪽 세계가 궁금하시면 건너다보셔도 좋고 아예 이쪽으로 이주해 보셔도 좋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자유롭거나 행복할 수도... 혹은 생각 이하로 뻔하고 그저 그럴 수도 있다.
<그래도 옆에 누가 있으면 좋잖아>
이런 말들을 딱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가 없으면 꼭 안 좋은 것'만도 아니다. 짝을 만나라는 이야기는 짝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라믿고 싶다.가끔은 깍두기도 필요하고 때때로 짝수인 줄 알았던 것들이 제 짝이 아닐 때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짝수'라는 균형 잡힌 세계가 올바른 세계라고 믿는 이들에게 감히 한마디를 전하려 한다.
저기.. 한마디만 할게요.
저는 원래 수학 시간에도 홀수를 좋아했어요. 1과 자기 자신밖에 나눌 것이 없는 소수(素數)들이라면 더더욱이요. 그래서 외칩니다. 저는 제 삶이 홀수여도 좋고 소수여도 좋아요. 안타까운 소수(少數)로 저를 쳐다보지 마시고 아름다울 수도 있는 소수 및 홀수로 저를 응원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