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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May 11. 2024

덤벙의 서막

-챙겼어?

-아, 맞다.


-가져왔어?

-아, 맞다.


-사 왔어?

-아, 맞다.


-오늘까지 해야 한다며?

-아, 맞다!


-사 왔어?

-응, 여기!

-두부 말고 달걀 사 오랬잖아....

-앗, 맞다...



내 일상은, 아니 내 일생은 '아, 맞다!'로 꾸려 온 일생이다. 덤벙의 역사를 어떻게든 뒤집어 보겠다고 꾸준히 노트와 필기구를 사 들였다. 지금도 나의 노트에는 차곡차곡 그날의 할 일들 빼곡히 적혀 있다. (그러나 그 노트 펼치는 일을 종종 깜빡한다.)



이제부터 그 덤벙의 흑역사를 지우고 반드시 꼼꼼한 인간이 되어 보리라... 라는 다짐 따위로 이 연재를 시작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를 잘 안다. 앞으로도 내 인생은 '덤벙'과 한데 뒤섞인 인생일 것이다. (앗, 연재 브런치북 쓰는 날인데 또 깜빡했네! 이럴 것이 자명하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고 했는데 나는 한 우물 대신 한 눈을 판다. 한쪽 눈은 이곳을 기웃, 다른 한쪽 눈은 저곳을 기웃기웃. 차근차근 탑을 쌓아 올려야 공든 탑을 세워 올릴 텐데 첫 단추부터 꿰는 일을 종종 잊고, 마치 치약 한가운데를 쭉 짜듯이 대강 단추를 잠그고 대강 길을 나선다. 


나의 이 '덤벙' 서사, 어쩐지 나만 혼자 보기 아깝다. 이곳에 덜커덕 쏟아 놓으며 같이 '하하 호호'거리고 싶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 '덤벙'이 '쯧쯧거리는 위로'가 되길,

누군가에게 나의 이 '덤벙'이 '웃참의 위안'이 되길.



'덤벙'도 때로는 기이한 재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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