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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May 25. 2024

기적처럼 찾아오셨습니다만

'덤벙'을 연재하려는데 정말 기적 같은 에피소드가 터져 버렸다. 이걸 좋다고 웃어야 할지 어째야 할지...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덤벙 일지(연재 브런치북)의 첫 화인 '덤벙의 서막'을 써 놓고 외출을 하던 날이었다. 물론 이야기는 '작가의 서랍'에 고스란히 저장되어 어디로도 달아나지 못하게 단단히 묶어 둔 상태였다. 아무도 훔쳐가지 못하도록, 아니 훔쳐갈 이 하나 없는 허랑방탕한 이야기인지라 재빨리 '저장' 버튼만 누르며 나는 곧장 나의 현생으로 날랐다.


"자, 이제 한 번만 더 확인해 보고 발행해 볼까?"


오전에 다 써 놓았던 터라 오후 2시쯤 '발행' 버튼을 눌렀다. 발행 버튼을 누를 당시, 나는 어느 백화점 화장실의 거울 앞이었다. 엄마와 쇼핑을 나선 길이었고 화장실에서 나올 엄마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침에 다 써 둔 글이니 '빨리 발행해 버리자!'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읭? 어디 갔어? 응??? 어????!!!'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내가 쓴 글이 '저장 글'에도 없고 발행된 글에도 없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지? 저장 글이 사라지는, 뭐 그런 오류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인가! 어디다 하소연을 한단 말인가! 손으로도 안 써 놓았고 집에 간다 해도 노트북을 다 꺼 둔 상태라 복사할 글도 없다. 하아.. 어쩌지...


가만.. 근데 가만가만... 방금 팝업창이 하나 뜬 것 같긴 한데... 내가 연필 모양을 눌렀던가, 휴지통 모양을 눌렀던가.. 발행 버튼을 눌렀던가. 아니, 그냥 나가 버리려 했었나? 내가 읽지도 않고 '예'를 누른 작은 팝업창은 무슨 내용이었을까.


작성 중인 내용을 저장하지 않고 나가시겠습니까? 이것이었을까?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삭제된 글은 복구가 불가합니다. 아니면 이것이었을까?

아.. 도대체가 모르겠다.


잠깐만... 근데 휴지통이 맨 왼쪽 아니었나? 학... 학... 아니다, 휴지통 모양은 연필 모양의 오른쪽, 그러니까 발행 버튼의 왼쪽 부분에 있다.... 점 나의 의식이 흐려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범인은 한 사람이다. 그 한 사람의 손길이 심히 의심스럽다. 찰나의 선택을 향한 나의 의심은 점점 굳어진다. 야, 이... 이 사람아...


하아아.. 이런 미...틴...

설마.. 내.. 내가 나를(내 글을)?


아무래도 나의 손가락이 순간적으로 잽싸게 '휴지통' 모양을 눌러 놓고 신나게 '예'를 누른 모양이다. 정말 삭제하겠느냐고 물었을지도 모른다. 경고성 창이 떴는데도 '무얼 그런 걸 물어?'라는 '덤벙'스러운 생각으로 메시지 확인을 건너뛰어 버렸다.

'발행' 버튼을 누르면 그냥 발행할 것인지 매거진이나 연재 브런치북에 해당 글을 넣을 것인지 묻는다. 하... 그렇게 묻는다는 것을 잊고 그냥 '예'를 눌러 버렸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하아... 진짜 오랜만에 나 자신에게... 빡...도오ㄹ... 욕이 나올 뻔한다.



부디 처음 썼던 글이 나중의 글보다 못난 글이었기를 바랄 뿐이다. '덤벙 첫날'부터 아주 장대하게 삐걱삐걱, '덤벙인'다운 자세다.


01화 덤벙의 서막 (brunch.co.kr)


이 글은 시작부터 이런 우여곡절을 띠고 출발하였다. 서막부터 덤벙이라니, 어쩌면 이 덤벙일지 "앗! 두고 왔습니다"는 제법 순조롭게(?) 덤벙을 쭉쭉 뽑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앗! 두고 왔습니다.
-뭘요?
-아, 네. 정신머리를요.
-또요?
-아하하... 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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