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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Aug 02. 2024

주말인데 나, 안 만날 거야?

응, 아니야

금요일 밤에 난데없이 등장한 나의 애인.

설마 금요일... 이 불금에 나타나리라고는.


불안 씨: 조금 있으면 월요일이 곧 오잖아. 그러니까 내가 너 심심할까 봐 왔지!

(아직 토요일도 일요일도 남았는데 벌써 이렇게 찾아온다고?)



나: 아직은 아니야.. 오늘은... 우리가 만나기에는 좀 이르지.

불안: 왜, 나 안 보고 싶었어?

나: 어? 아.. 아니. (응... 보고 싶겠냐?) 아무튼 좀... 가 줄래?(꺼져 줄래?) 

불안: 왜 그래, 평소답지 않게?

나: (미안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미안. 혼자 있고 싶어.

불안: 치... 알았어. 그럼 내일 아침에는 깨워 줄 거야?

나: 푹 자 둬.

불안: 안 깨우는 거 아니지?

나: 어? 어어... (미쳤냐, 토요일 아침에 불안을 깨우게? 나뿐 아니라 전국의, 아니 이 우주의 모든 이가 토요일 아침만큼은 널 안 만났으면 한다. 나 말고 이 우주의 모든 이에게 양다리, 아니 문어발식 다리를 걸치고 있는 내 애인...)

불안: 그럼 네 말만 믿고 나 잠깐 외출한다. 

나: 응. 되도록 멀리 다녀와. 그리고 불안... 한마디만 보탤게. 곧 주말이야. 눈치 챙겨. 

불안: 응?

나: 어디 다른 데 가서 다른 사람 불안하게 할 생각도 말라고. 나한테서 잠시 멀어진다고 누군가의 괴로움이나 외로움을 또 이용할 생각은 말라고.

불안: 치, 그게 내 전공인데. 그럼 나, 주말 내내 자야 해?

나: 응. 넌 좀 쉬어야 해. 그동안 나는 산책도 가고 도서관도 가고 티브이도 보고 브런치에 글도 쓸 거야.

불안: 아... 그렇군. 그럼 주말엔 나랑 데이트 전혀 못 하겠네?

나: (아오, 그만 좀 매달려라, 이 녀석아.) 응. 못 만나. 나, 바빠.

불안: 알았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

나: 연락? (그동안 고생했고,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어? 어... 어.. 상황 봐서.


나는 오늘도 불안에게 '헤어질 결심'만 하다 끝내 이별을 유예하고 만다.

하지만 불안에게 선언한 대로 나는 주말에 산책도 하고 책도 읽고 파리올림픽도 신나게 응원하고 낮잠 밤잠 가리지 않고 많이 자 둘 것이다. 그렇게 맞이한 주말 아침은 나의 애인이 전~혀 그립지 않은 아침일 것이다.


이렇게 슬슬 불안에게서 '잠수 타는 연습'을 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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