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딸이다. 자라면서는 물려받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내가 작아지기 시작하면서, 더 정확히는 다른 사람(가령 동생)이 나보다 더 커지기 시작하면서 나에게도 '물려받는 일'이 종종 발생하였다.
"신발 사이즈가 몇이라고 했지?"
건너 건너 신발을 물려주는 친척들이나 입었던 옷을 물려주는 친척들도 있긴 했다. 내 돈 주고는 사지 않을 고가의 중고 물품도 물려받아 보았다. 물론 가장 많이 물려준 사람은...
"언니, 살쪘지?"
"네. 왜유?"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저절로 공손해진다.
"(잘됐다.) 그럼 이 옷 맞을 수도 있겠다. 입고 나와 봐."
요즘 '살이 찐' 동생이 '살찐' 언니에게 자기 옷을 권한다. 이런 일은 이미 예견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내 키를 월등히 앞질러 버린 동생이다. 그녀에게서 윗도리 혹은 아랫도리를 물려 입는 일은 점점 흔해졌다. (키 큰 사람의 바지는 얼마든지 줄여 입을 수 있다. 그 반대는 좀 많이 어렵겠지만. 가만 보면 키가 작은 것도 가끔 장점이 있다.)
그러던 내가 하다 하다(?) 이분들께도 옷을 물려 입기 시작하였다.
"봄봄 이모, 이 옷 입으실래요?"
오잉? 동생이 동영상을 보냈다. 영상 속에서 둘째 조카가 패션모델이 되어 빙그르르 자신의 옷을 보여 준다. (마무리는 웨이브 댄스)
정확히 작년부터, 본격적으로는 올가을부터 옷을 물려받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허리가 조금 작아서 숨을 참고 입어야 했지만 올해부터는 '내 옷 입듯' 자연스럽고 포근하게 착 붙는다. 대를 이어 가며 나에게 옷을 물려주는 살뜰한 모자(母子)다. 다음은 내가 물려받은 옷들 가운데 몇몇이다.
참고로 나의 사랑스러운 쌍둥이 조카는 만 9세. 초3이다. 키가 150cm에 육박한다. 키로 따지면 나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다. (뒤에서 보면 남매 같을 때도 있다. 키가 비슷해졌는데도 여전히 나에게 그들은 아가 같다. 귀여워 미친다.)
무언가를 물려받아 좋은 점은 한두 개가 아니다.
첫째, 옷값이 굳는다.특히 물려받은 윗도리들은 외출복으로도 손색이 없다.
둘째, 입을 때마다 조카들 얼굴이 떠오른다. (원래도 하루에 열두 번쯤 생각나는데 더 자주 생각나서 '기부니'가 참 좋다. 이 옷을 입고 다녔던 조카들 모습까지 떠오르면 미소가 둥둥 떠오른다.)
셋째, 쌍둥이라서 같은 옷이 두 벌씩! 두 배로 옷을 물려받는다! 1+1의 행운!
전 직장에서 어떤 여자분이 예쁜 원피스를 입고 출근했다. 사람들이 잘 어울린다고 칭찬하자, 그분이 말했다.
"해외 직구로 샀는데 이거 키즈 상품이에요. 후후."
응? 키즈옷을 입는다고?리얼? 그땐 신기해했는데 이젠 그 사람이 다름 아닌 내가 되었다.
출처: kbs 211017 <열린음악회> 화면 갈무리, https://youtu.be/QilnJMcIJYo?si=bHXZOTdmB3Tmgviy
동생이 귀여운 생명체를 낳아 준 것만으로도 이모로서 '럭키비키'할 일인데 이젠 물질적인 즐거움까지 누린다. 앞으로 쌍둥이 조카가 계속 자라고 자라면...? 와~ 나 이제 물리도록 물려받을 수 있는 거 아니야?잘~하면 나, 겉옷에 운동화까지 가능하겠는데?
좋은 것을 물려줘도 모자랄 판에 조카들에게서 벌써 '삥' 뜯을 생각부터 하는 이모다. 변명(?)을 해 보자면, 물려받으면 자원도 아끼고 애정도 샘솟는다. 덩치 작은 분들께 조카들이나 자식들에게서 무언가를 물려받아 써 보시라고 장려하고 강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