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몇 년 전 일이다. 청소년 친구들의 끊임없는 축하, 동네 친구들과 학교 친구들, 그리고 직장 동료들. 심지어 어디엔가 던지고 다닌 연락처 때문에 치과나 은행, 센터 등에서도 온종일 축하를 보내던 날이 있었다. 쏟아지는 축하 인사로 내내 답장을 보내느라 분주했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그때는 청소년 친구들에게 선물까지 많이 받았다. 편지가 특히 많았다. 아기자기한 손글씨를 받아 본 사람은 안다. 그 몽당연필의 감성이 사람을 얼마나 아늑하게 녹이는지. 그렇게 '받기만' 하던 생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받지 않는다. 축하는 줄었고 내 삶의 행동반경도 줄었다. 동네 친구의 대화방에서만 조용히 그림말(이모티콘)들이 올라올 뿐이다. 내가 '보내는 축하'가 줄어서 '받는 축하'가 줄어든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점점 사람들을 넓게 사랑하지 않아서 타인들의 사랑이 작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데도 마음이 차분하고 따스하다.
왜 날 태어나게 했냐고 부모를 상대로 고소를 한 사람들도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삶이 대체로 녹록지도 만만치도 않다. 한 고개 넘으면 또 한 고개다. 한 스테이지를 깨부수어도 최종 스테이지는 보이지 않는다. '최종 보스'는 언제쯤에야 겨룰 수 있는 것인지, 아니 내 인생에 하이라이트의 순간이 오기나 하는 것인지 의구심만 차오른다. 사실 어젯밤에도 일기를 쓰며,
나는 왜 태어났지. 그리 대단한 발자국도 찍지 못했고, 한 발자국씩 내디디는 것도 어째 자꾸 힘이 들기만 하는데... 이런 낙서를 일기장에 두서없이 적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낙서에도 불구,
마음은 어쩐지 차분하고 따스했다.
태어나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누렸고 주었고 보냈다. 어쩐지 그것만으로도 태어난 이유가 충분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축하를 받아도 받지 않아도 괜찮다. 나를 스쳐간 모든 분께 그저 조용히 감사를 드리고 싶다. (생일이라는 핑계로 안부를 전할 수 있다는 점도 감사하다.)
그래서인지 생일인데도 들뜨는 기분보다는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이, 그러면서도 따스하게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내년 생일에도 그저 딱 이 정도의 미지근한 온도로 내 삶을 조용히 관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오늘, 축하 자리는 있다. 잠시 후에는 가족끼리 조촐한 생일잔치를 할 생각이다. 한 달 전부터 우리 쌍둥이 조카를 초대했다. 어제는 조카들에게 이런 문자도 남겼다.
한 녀석에게서는 답장이 왔고 다른 한 녀석은 답장을 생략했다. 뭐, 그래도 괜찮다. 이모 선물을 미리 준비했다고 자랑하는 녀석의 음성만으로도 충분하다.
받아도 받지 않아도 좋지만 오는 축하는 기쁘게 받을 생각이다. 특히 내가 나에게 보내는 축하는 마다하지 않을 생각.
그런 의미에서, 오늘 밤에는 조용히 나 혼자 나를 축하해 주어야지.
그동안 좀 힘들었지? 그리고 그동안 좀 행복했지?
그러니 너는 축하를 받아 마땅하다고, 내 마음을 쓰다듬어 주어야겠다.
그냥 나인 자체로 좋을,그런 너를 축하한다고, 그렇게 내일부터 또다시 잘 살아 보자고,
아니 잘 살진 못해도 이렇게 삶을 조용히 차분히 따스이 이어 가 보자고 나 자신을 설득해 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