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깡패 수업

1

by 봄남

1.

강원도 영월.

바람에 쓸려 부딪힌 풀 소리와 가끔 지저귀는 새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깊은 산속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산 중턱에 크지 않은 오두막 하나가 있었다.

사람 인기척 이라고는 들을 수 없는 고요한 곳. 그날도 여전히 다른 할 일이 없었던 홍위는 글을 쓰려고 붓을 들었다.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홍위의 가슴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툭!

그는 붓을 들고 있던 손을 부르르 떨다가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끝내 떨어뜨렸다. 먹물이 바닥에 이리저리 튀었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문고리에 고정하고 있었다.


“어명이요!”


우렁찬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홍위는 가만히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를 보필하던 신하 두 명이 어쩔 줄을 몰라하며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허우적거렸다. 그 뒤로 서신을 들고 있는 벼슬아치와 그의 무리가 줄지어 서있었다.


“죄인 노상군은 사약을 받으시오.”


벼슬아치가 온 동네 사람들의 귀에 닿도록 소리쳤다.


‘거 참 목소리 한 번 거창하네.’


그러나 들을 사람 한 명 없는 한적한 동네에서 쩌렁쩌렁 외쳐 대는 벼슬아치의 꼴이 홍위는 야속했다.


“올 것이 왔군요.”


홍위는 예상했던 손님이라는 듯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고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이었다. 그는 마당 한가운데 서 있는 벼슬아치 앞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그동안 이 못난 사람을 보필해 주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어쩔 줄 몰라하는 신하들에게 공손히 말했다. 그들은 더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소리 내어 흐느꼈다.


“저… 전하…!”


그들은 수양 대군이 쫓아낸 문종의 아들, 이홍위를 끝까지 보필했던 신하들이었다. 그들은 홍위가 맞이할 억울한 죽음에 탄복했다. 수양대군은 왕위에 오르자 이홍위의 신분을 낮춰 왕에서 노상군으로 부르도록 하였다.


홍위가 벼슬아치 앞에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다른 벼슬아치가 하얀 그릇에 사약을 들고 나와 그의 앞에 건넸다.


홍위는 독한 냄새가 나는 검은색 사약을 한참이나 쳐다본 뒤 하늘을 한 번 감상했다. 이로써 생을 마감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함이 치솟아 올랐다. 수양대군에게 칼 한 번 못 뽑아 본 자신의 무력감에 한탄했다.


“매정 없이 아름다운 하늘이여 그대는 나의 고뇌와 아무 상관이 없구려.”


그가 흐느끼며 외쳤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는 더 이상 침착할 수 없었다. 그는 두 손으로 사약 그릇을 감싸고 들었다. 그리고 입으로 갖다 대었다. 눈을 질끈 감고 이 순간이 빨리 끝나길 바랬다.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 해야 한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사약을 입 속에 털어 넣었다. 네 번의 꿀꺽 거리는 소리가 난 후 사약 그릇이 툭 떨어졌다. 그가 눈을 질끈 감자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 다는 듯 눈물이 터져 나와 그의 광대를 따라 주르륵 흘러 떨어졌다.



2.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떴다. 몇 시간이 지나도 노상군의 상태는 나빠지지 않았다. 그가 사약을 먹고 난 뒤 잠깐 동안 식도와 배의 통증이 있었으나 그때뿐이었다. 그의 눈은 더 총기가 있었으며 머리는 맑아졌다.


그는 죽지 않았다.


방 안에서 그가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을 확인 한 벼슬아치는 심하게 당황했다. 그는 같이 온 다른 벼슬아치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말했다.


“이런 일이 있소? 도대체 왜 죽지 않는 것이오?”

“아니 글쎄, 이런 일이 있다고 들었소! 그래서 다섯 병을 준비해 온 것이 아니오.”

“경과를 더 지켜보다가 한 번 더 사약을 내려 봅시다. 아마 서서히 죽을 것이오.”

“그러지요.”


그들은 못마땅한 눈초리로 멀쩡히 앉아 있는 홍위를 흘겨보았다. 홍위는 자신을 보필해 준 신하들에게 다가갔다.


“당신들이 보기에도 내가 괜찮아 보이오?”

“네.. 전하…어느 때 보다 건강해 보이십니다.”

“흠… 어찌 된 일이지? 어느 때보다 기운이 나오.”


그는 원을 그리며 목을 돌려 보고 작은 뜀박질을 하면서 팔목도 흔들어 보았다. 그의 몸 사위가 산이라도 탈 수 있을 만큼 가벼워졌다.


‘채질에 맞기라도 한 것인가? 당장이라도 수양대군에게 달려가 칼을 휘두를 수도 있겠다.’


미간을 심하게 찌푸린 벼슬아치가 돌돌 말린 긴 서신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에 가벼운 매질을 하며 홍위에게 다가갔다. 총총 뛰고 있던 홍위는 어느새 다가온 벼슬아치에 놀라 몸짓을 멈추었다.


“다시 사약을 받으시오.”


벼슬아치는 다시 소리쳤다.


‘거 참 일 열심히 하는구나. 넌 이 새끼야 유두리가 없다.’


홍위는 벼슬아치와 잠시 눈싸움을 하듯 노려본 후 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는 사약에서 나는 독한 냄새 때문에 잠시 코를 찡그렸다. 잠시 사약 그릇을 바라보았지만 이번엔 뜸을 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사약을 털어 넣었다.


그 이후로 저녁이 될 때까지 다섯 사발을 다 마셔 보았다. 그러나 홍위의 상태는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반대였다.


“끄어어어억…”


많은 양의 사약을 먹은 홍위는 트림을 연신 해대며 마당 안을 돌아다녔다. 그는 가만히 앉아 있는 벼슬아치 뒤로 다가가 귀에다 대고 말했다.


“이보시오…. 배가 좀 부르오. 또 마셔야 하오?”


당황한 벼슬아치는 어깨를 움찔했다. 게다가 홍위의 입에서 사약 냄새가 진동했다.


“조.. 죄인… 노노 상군은.. 잠시 이곳에 계시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같이 온 다른 벼슬아치들에게 합류했다. 홍위가 두 눈을 번쩍 뜨고 그에게 멀쩡한 정신으로 이야기할 때마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그가 두 팔을 펼쳐 어깨동무를 하듯 벼슬 아치들을 모은 다음 잠깐의 토의를 하기 시작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대로 가면 우리는 어떻게 되오? 왕에게 죽는 것이오?”

“거 참. 배가 부르다니! 나는 배가 고프오…”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배를 움켜잡고 한 벼슬 아치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이 속삭이듯 말했지만 멀찌감치 있던 홍위와 함께 있던 신하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같이 있던 신하들은 평상에 앉아 있는 노상군의 팔과 다리를 주물러 주기 시작했다.


왠지 기싸움에서 이기고 있는 것 같았다. 하늘의 뜻처럼.


벼슬아치가 주저하는 발걸음으로 노상군에게 다가왔다.


“그… 죄인. 노상군.. 내일 다시 오겠소!”

“네 그러시지요.”

홍위가 일어나 목례를 했다. 그 사이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벼슬아치들은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문 밖을 나서자마자 홍위의 신하 한 명이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전하.”

“나도 모르오. 어찌 됐든, 내 생이 며칠 더 남은 건 사실이구려.”

“감축 드립니..”


그가 말을 스스로 끊었다. 며칠 더 산다고 예정되어 있는 죽음을 막을 수 있을지 순간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3.



일주일 후

휘이익!

마당을 쓸고 있던 신하들이 휘파람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았다. 한 벼슬아치가 노상군을 보필하고 있던 신하에게 은밀하게 접근한 것이다.


“여보시오. 이건 어명이오. 죄인 노상군을 오두막 안에 두고 오두막을 불태우라는 어명이 있었소.”


벼슬아치가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아.. 아아 안돼오.”


그는 고개를 부르르 떨며 말했다.


“당신이 이 일에 동조하지 않으면 당신도 같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

“그… 그…럴 순 없.. 소…”

“오늘 밤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시오. 그러면 우리가 불을 지를 것이오.”

“….”

“그럼 받아들인 것으로 알고 난 가겠소.”

“아.. 아니..”


그가 뒤를 돌아보니 벼슬아치가 말을 끝내고 쏜살같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깊은 상념에 빠졌다. 결국 수양대군이 홍위가 자신과 같은 짓을 할까 두려워 싹을 자르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오후 내내 그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본 다른 신하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가 이만저만한 사실을 알리자 다른 신하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차라리 자결하겠소! 어떻게 그의 말에 따를 수 있단 말이오!”


그들은 말없이 산 너머로 내려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붉게 물들인 하늘을 보며 울컥하는 마음이 들자 한 신하가 가슴을 부여잡고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 식사라도 제대로 해드립시다.”


그들은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닭 한 마리를 잡아 식사를 시중드는 나인에게 전하며 노상군에게 백숙을 해드릴 것을 부탁했다.


“전하. 백숙입니다.”

“맛있겠군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입니다. 하하.”


그들이 백숙을 홍위에게 전하고 식음을 전폐했다. 그들은 식사는 물론이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깊은 밤이 되자 홍위가 있던 방에서 촛불이 꺼졌다. 홍위는 이불을 피고 자리에 누웠다.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았던 홍위는 누워서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며칠 전 자신에게 사약을 내리러 온 벼슬아치의 표정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났다.


‘나의 죽음은 하늘의 뜻에 달렸겠지.’

백숙 때문인지 방에 불을 많이 때어서 인지 몸에 땀이 났다. 그때 그가 달빛에 비친 그림자 두 명이 자신의 방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이지…?’


방 안은 찜질방이라고 해도 무색할 정도로 뜨거워졌고 어느새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뜨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그가 일어나 앉아 신하들을 부르려는 찰나, 아주 밝은 빛의 파편이 자신의 집으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서 더 큰 파편이 또 날아왔다. 불이었다.


그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 보려 했지만 나무판자와 걸쇠로 걸어 잠긴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여보시오! 불이오! 도와주시오! 도와줘!”


그는 문에 붙어 있는 한지를 모조리 뜯기 시작했다. 그가 두어 발자국 뒤로 물러 섰다가 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하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몸을 써 본 적 없는 그의 등과 허리만 아플 뿐이었다.


불은 점점 더 거세어졌다. 지붕에도 불, 벽에도 불, 문에도 불이 있었다. 방바닥은 발을 델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거기 누구 없소! 도와 주..!”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는 놀라 뒤로 넘어졌다. 자욱해진 연기에 앞을 볼 수 없었고 무엇보다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참을 수 없는 구토와 현기증에 머리가 아파왔다. 그가 아직 타지 않은 이불 위에 머리를 감싸 안고 주저앉았다. 그때 뒤에서 이상하리만큼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다.


그가 뒤를 돌아보자 파랗다 못해 검은빛을 내는 웅덩이가 벽의 사분의 일 정도의 크기로 서있었다. 그 웅덩이를 보는 순간 고동치던 심장이 차분해지고 따가웠던 눈과 코가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었다.


‘이게 뭐… 지?’


그가 세로로 서 있는 웅덩이 안에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는 물의 회오리를 바라보며 손을 가져다 대 보려는 순간,


“불이다! 불이야!”

“물 가져와요 물!!”


신하들의 외침이 밖에서 아득하게 들렸다. 그는 신하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문 쪽으로 고개를 다시 돌렸다.


‘왜… 이제야 나타나고… 지랄들이오… 내가 사약으로 못 죽더니 불에 타서 이대로…. 죽는구나…’


그가 실눈을 뜨고 다시 심연의 웅덩이를 향해 바라보는 순간.


첨벙!

커다란 손이 나와 그의 머리채를 잡고 웅덩이 속으로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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