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
‘왜… 이제야 나타나고… 지랄들이오… 내가 사약으로 못 죽더니 불에 타서 이대로…. 죽는구나…’
그가 실눈을 뜨고 다시 심연의 웅덩이를 향해 바라보는 순간.
첨벙!
커다란 손이 나와 그의 머리채를 잡고 웅덩이 속으로 끌고 갔다. 분명히 물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는데 몸은 젖지 않았고 마른 바닥에 누워있다.
콜록콜록…
“여기가.. 어디…?”
그가 마른기침을 끝내고 무릎으로 땅을 짚고 섰다. 그를 죽이려 했던 작자들에 대한 분노는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머리는 맑아졌고 두 눈이 번쩍 떠졌다. 그는 찬찬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불에 타고 있었다. 웅덩이 속으로 들어가서 나온 곳이 바로 이곳인가…?’
주위엔 커다란 나무들이 즐비해 있고 하얀 안개가 땅에 가라앉아 있어서 땅의 모양을 알 수 없었다.
‘내가… 드디어 죽었나 보군.’
끝없는 고요가 흘렀다. 이상하게 두려운 적막은 아니었다. 즐비한 나무들 때문에 그는 이곳이 숲이라고 생각했지만 숲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풀벌레 소리나 동물 소리가 일절 들리지 않았고 바람도 불지 않았으며 위로는 이상하리만큼 빼곡히 자리 잡고 있는 나뭇잎 들 때문에 하늘을 볼 수 없었다. 풀잎 사이로 간간이 몇 가닥 빛만 뚫고 나왔다.
적막하고 고요했다. 맑고 깨끗한 공기가 폐 속까지 뚫고 들어와 그의 정신을 온전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는 매우 차분해졌다.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보다 어떤 남성이 자신의 뒤에 서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괜찮냐?”
“으아압!”
그가 여자 아이처럼 높은 톤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고요한 적막을 깨뜨리는 자신이 민망했는지 자신의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이 남자는 여기에 이렇게 서서.
아마도 그의 머리채를 잡아 끄집어내어 준 사람일 수도 있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저승사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옷의 모양을 입고 있는 그 남자는 지금까지 본 사람의 얼굴 중에 제일 험악하게 생겼다. 머리 모양이 양반인지 상놈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새로운 것이었다. 아주 고불거리는 짧은 머리였다.
눈과 코는 날카롭고 수염이 없는 턱 또한 날카로웠다. 아주 마른 몸매였지만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의 풍채는 작지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팔과 목에는 웬 그림이 아니 낙서가 그려져 있었다. 그 남자는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잘못하면 베일 것 같은 날카로운 눈빛 때문에 절로 시선을 내렸다.
“누구… 시오?”
“너야 말로 누구지?”
당당하게 반말을 하는 그 남자의 기세에 눌려 대답하는 것에 시간이 걸렸다.
“ㄴ… 나는… 이홍 위요.”
“홍이? 생선인가?”
“홍. 위.”
홍위는 자신의 이름을 정확하게 말하려 입 모양을 동그랗게 모았다가 폈다. 그 남자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절로 공손해졌다.
“중국 이름 같네. 거, 우리 뒈진 거 알지?”
그가 죽은 것 따위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말했다. 홍위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죽어가고 있긴 했는데… 그때까지도 어떻게 된 것인지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게다가 생전 처음 보는 듯한 이 아저씨는 누구인지 정말 궁금했다.
“아 여… 역시…그.. 그.. 런거죠?”
홍위는 거친 말투의 남자가 행색이나 말투로 보아 조선 시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면 이곳의 저승사자인가. 그가 익히 들었던 저승사자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여기가 열반의 세계라도 되는 겁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 난 딱 지옥 가야 마땅한데… 뭐, 여기 남자 둘 뿐이잖아? 충분히 지옥이네.”
그가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주변을 돌아보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여기가 어딘지… 당신도 모르는군요.”
“…..”
“그래.. 그대 이름은 무엇인가요?”
홍위가 용기 내어 물어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여자 아이처럼 고았다.
“그.. 그대..? 하…”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젓다 한쪽 입 꼬리를 올렸다. 한복을 입고 상투 머리를 하긴 했지만 한 없이 어려 보이는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한 마디 하려 다가 첫 만남에 웬 꼰대 짓인가 싶어 하려던 말을 꾹 눌렀다.
“김단종. 거, 형이라고 불러.”그가 악수를 청했다.
“단종…”
홍위가 이름을 기억하겠다는 듯 되풀이하며 손을 내밀었다. 단종이 잡는 손아귀의 힘은 엄청났다.
“아아아아아…”
홍위는 따가운 상처에 알코올 솜이라도 문지른 것 마냥 몸을 비틀며 소리 질렀다. 그 모습을 본 단종은 피식 웃었다.
“거 몇 살이야?”그가 턱으로 홍위를 가리키며 담배를 찾았다.
“저는.. 17살이요. 댁은?”
“대액?”
홍위는 버럭 하는 그의 목소리와 날카로운 눈빛에 거북목 들어가 듯 어깨를 움츠렸다. 단종은 아까부터 거슬리는 홍위의 말투와 행색을 보고 여러 가지 호기심이 생겼지만 그의 무례함에 본능적으로 성질부터 내었다.
“하…. 이게 어디서 반말이야.”
“댁도…. 반말을 하.. 하하잖아….. 요.”
홍위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참나. 차림새를 보아하니 뭐, 양반이라도 되나 봐? 당신은 뭐, 아역 배우야? 민속촌에서 왔어? 어디서 온 새끼야? 우리나라에서는 무조건 나이 든 사람이 최고야, 나한테 존댓말 해 이 새끼야. 눈 깔고. 응. 그렇지.”
그는 찾고 있던 담배를 찾지 못하자 현실 세계가 아님을 깨닫고 뿌연 연기를 발로 차 내었다.
‘에잇…’
“….”
홍위는 상놈처럼 생겼지만 되려 당당한 이 아저씨가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와 과한 감정 흐름 때문에 본능적으로 눈치를 살폈다. 그가 누군가 앞에서 시선을 떨군 적은 처음이었다.
“하아. 그래 뭐… 요즘 것들은 정신이 나갔으니.”
“근데 나를 왜 잡아끌어당겼지?.. 요? 그.. 그쪽이 나의 머리를 잡지 않았소?”
“하…그 씨ㅂ 말투 참나.. 어 그렇지.”
“내가 살고 있던 집에 불이 났는데 갑자기 웅덩이가 보였소. 거기에 손이 나오더니 나의 머리를 잡고 이리로 데려온 거… 맞죠?”
홍위는 이상한 행색을 하고 있는 무례한 남자가 저승사자가 아닌 것을 깨닫자 조금 혼란스러웠다. 김단종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뒷짐을 지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더니 오른 검지 손가락을 쳐들고 공중에서 흔들었다.
2.
김단종은 조수석 뒷자리에 다리를 꼬고 앉아 파일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파일 표지에는 ‘호산 엔터테인먼트 성상납 연예인 리스트’라고 쓰여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20년간 기다려온 그의 복수는 이루어지고 말 것이다. 그는 만족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단종을 태운 고급 세단은 경기도 시내 어딘가를 달리고 있었다. 그가 만나기로 한 남자가 어느 공터에 서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에게 이 파일을 건네 주기만 하면 단종의 임무는 거의 끝난 것이었다.
“거의 다 왔어 김기사! 아버지가 못 이룬 정의가 드디어 내 손에서 실현되는 날!”
“네. 형님.”
빵! 빠아아아아아아앙!
그가 파일을 옆 자리에 내려놓자 오른쪽으로 거대한 트럭이 돌진해 오는 것을 보았다.
쾅!
그가 채 두려움을 느끼기도 전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충격이 있은 후 정신이 나갔다. 그리고 눈을 떠 보니 알 수 없는 숲에 누워 있었다.
“…. 뭐지?! 김기사! 핸드폰!!”
그는 자신의 옷매무새를 이리저리 만지고 정신을 차려 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서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종아리까지 쌓인 자욱한 연기를 발로 차 보았다. 빽빽한 연기 때문에 연기를 아무리 헤쳐 보아도 땅의 모양은 볼 수 없었다.
‘나…. 죽은 거…?’
그는 갑자기 끌어 오르는 분노를 주최할 수 없었다.
“아이아아아아아악!”
그가 괴성을 내질렀다. 그의 괴성은 메아리도 없이 사라졌다. 복수를 눈앞에 두고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니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잠시 서서 기억을 천천히 되짚었다. 그는 리스트를 들고 경기도 외각으로 가고 있었고 ‘그 남자’를 만나서 정보를 전달해 준다면 모든 계획은 끝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트럭?
“아! 씨! 뭐야!!! 그지 같은 인생!!!”
그는 어디든 하얌 없이 걷기 시작했다. 길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가 한 참을 말없이 걷다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누구 없어요? 나 어디예요? 어떻게 된 거예요? 누가 말 좀 해줘 어떤 새끼가 날 이 딴 곳에 데려다 놨는지!”
꿈을 꾸는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두 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어 잡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왜 더 치밀하지 못했나, 최선을 다하지 못했나, 후회되는 일뿐이었다. 그때였다.
“살려줘!”
살려달라는 비명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이곳에 와서 처음 듣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는 촉각을 곤두서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똑같은 나무와 자욱한 연기 때문에 도저히 방향을 잡을 수 없었지만 오로지 청각의 힘으로 그곳을 찾아야만 했다.
얼마 가지 않아 수심이 깊어 보이는 작은 웅덩이 하나를 발견했다. 분명 그곳에서 소리가 나고 있었다. 땅에는 연기가 자욱했지만 그 웅덩이만큼은 연기가 덮고 있지 않았다.
지름 100cm 정도 되는 동그란 웅덩이는 푸르다 못해 검은빛을 발했고 물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힘차게 돌고 있었다. 너무 신비한 나머지 그는 한 참이나 웅덩이를 바라보았다.
뭔가에 홀린 듯 그곳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니 웬 남자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웅덩이는 그를 위에서 아래로 쳐다보고 있다가 그의 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사극에서나 볼법한 행색의 남자가 상투 머리에 하얀 한복을 입고 불에 쫓기고 있었다. 뜨겁게 불타고 있는 집의 모습도 보였다. 여기저기서 불의 파편이 쏟아졌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불 속에 있는 사람이라…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그는 호기심에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 분명 물을 만진 것 같았는데 손가락은 물에 젖지 않았다. 이번에 그는 더 깊숙이 손을 넣었다. 불 때문인지 뜨거운 공기가 느껴졌다.
그는 살려달라는 그의 상투 머리를 잡았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무를 뽑아 올리듯 힘껏 잡아당겼다.
‘응. 살려줘야지.’
한복을 입은 그 남자는 반쯤 기절한 상태로 지상에 올라왔다. 분명 물을 통과한 것 같았는데 그의 옷은 하나도 젖지 않았다.
“괜찮냐?”
“으아아아아 압.”
3.
“우리 둘 다 죽은 사람이야. 난 교통사고 당한 거고.”
“교통… 사고…. 라..”
홍위는 자신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교통사고의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그도 죽은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예의를 갖춰 김단종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하튼, 구해줘서 고맙다. 정말 그때 죽는 줄 알았다.”
“그래 나 아니었으면 너 개죽음… 너 인마 죽었어!”
홍위는 ‘아 맞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는 단종의 박력 있는 말투가 왠지 그를 유쾌하게 했다.
“나도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는데 평생 처음 와 보는 곳이니까 뭐, 천국이나 지옥이나 그런 곳이겠지.”
“나도.. 죽은 것이군.”
“뭐, 당장 인정은 안 되겠지만 그런 것 같아. 우리 둘 다.”
“근데 당신은 조선 사람이 아닌 것 같소.”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에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죽었다는 사실이 내내 단종을 힘들게 했다.
여기저기서 사람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한 방향을 향해 걷고 있었다. 나이는 제각각 그리고 여러 시대의 사람들이 각지에서 몰려온 듯했다.
아직 투구를 벗지 않은 채 온 중세 시대의 기사처럼 보이는 사람, 생전 처음 보는 재질의 옷을 입고 나타난 젊은 사람, 미국 사람처럼 보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손을 잡고 걸어가기도 했다.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긴 한가 보네. 근데 별별 사람들이 다 있군.”
“그러게 말입니다. 난 당신의 모습도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들은 모두 자석의 힘에 이끌리듯 한 방향을 향해 줄지어 가고 있었다. 그들이 가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여기.. 여기가 어디 예요! 난!!”
“What the fork are we going? (우리 쒼발, 모두 어디로 가는 거야!)”
아직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은 젊은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소란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무표정으로 걷기만 했다. 어떤 이는 연신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어떤 이는 세상 편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김단종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이홍위라는 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홍. 위. 넌 어쩌다가 불 속에 혼자 개죽음을 맞이 한 거야?”
“난…”
그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김단종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왕이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