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깡패 수업

3

by 봄남

1.



“근데, 홍. 위. 넌 어쩌다가 불 속에 혼자 개죽음을 맞이 한 거야?”

“난…”


그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김단종의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왕이었다.”

“하! 뭐냐. 웃기는 새끼네. 재미없고. 농담하지 말아라.”


김단종은 멈췄던 걸음걸이를 계속하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가 허탈한 표정을 지어내며 깊은 한 숨을 쉬었다.


“내 말을 믿지 못하면 더 이상 할 수가...”

“아무리 이 새끼야 우리가 저승에 와 있다고 해서 거짓말하면 쓰냐! 못돼 처먹은 놈. 으이그.”

“왕. 맞아요. 조선의 왕. 우리 아버지는 문종이고.”

“무.. 문종? 하.. 야!”


그는 어이가 없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홍위에게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난 세종대왕 밖에 몰라.”

“우리 할아버지.”

“뭐?”


김단종이 갑자기 멈춰 서자 아무 생각 없이 뒤 따라오던 사람들이 줄지어 부딪힐 뻔했다.


“앗.. 죄송 죄송.”


그가 건들거리며 인사한 후 뒤에 있던 사람을 앞으로 차례차례 인도했다.


“뭐? 할아버지가 세종대왕님 이시라고?”


그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하자 홍위가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 지요.”


그의 눈이 반짝이자 김단종은 ‘이 새끼 제법인데?’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근데 너 이름이 왜 홍. 위. 야?”

“내 아버지가 정해주신 거지요. 성함도 이현이었소. 문종과 세종은 돌아가신 다음에 붙여지는 이름이고.”


그는 그렇게 말하고 계속 걸었다. 김단종은 잠시 멀뚱히 서서 그가 뒷짐을 지고 팔자 다리로 유유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저!”


김단종은 그를 따라 잡기 위해 몇 걸음 뛰었다.


“정말이야? 네가 왕이었어? 너는 왜, 무슨 조, 무슨 종으로 안 끝나?”

“방금 말했잖아, 그건 돌아가신 다음에 붙여지는 이름이라고. 이제 내가 죽었으니까 누군가 붙여주겠지요.”

“오호… 그래? 그래서 왜 어떻게 죽게 된 거냐?”



2.




“우리 아버지 문종께서는 할아버지의 명민함을 닮으셨어요. 리더십도 좋고 훌륭하셨지만 왕이 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아 병으로 돌아가셨어요. 그 후로 내가 덥석 왕의 자리를 물려받게 된 것이 화근이 되었지요...”

“오오오얼.. 대박. 이거 진심이야?”


김단종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리고 소름이 돋는 듯 팔을 문질렀다. 연약한 아역배우 같았던 그가 조금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난 고작 12살이었어요.”

“헐. 12살 때 왕, 쩌는데?”

“쩌…쩐다? 정말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군.”


홍위는 한 숨을 쉬더니 김단종을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가만 보니 이 사람 우리 시대의 왕의 위치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 같았다.


“그 자리가 얼마나 큰 무게를 감당해야 되는 자리인지 형 같은 평민들은 모르겠죠.”

김단종은 홍위를 바라보면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본인이 평민이라고 여겨지자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평민이 맞지만 말이다.

“내.. 내가? 내가 왜 평민이야? 어떻게 그렇게 말해?”

“딱 보면 알지. 하는 짓이 딱.”

“네가 우리 세계에 대해 뭘 알아. 우리 세대는 나 같은 놈이 윗사람이야. 자.. 장군쯤 되지.”


김단종이 두 어깨를 하늘 위로 추켜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홍위가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하.. 뭐 이럴 줄 알았으면 학교 때 역사 공부 좀 해 놓는 건데. 그래서?”라고 말을 돌렸다.


그는 공부와는 담을 쌓은 사람이었으며 책을 피는 법이 없었다. 머리가 나쁘다고는 볼 수 없었지만 인문학 지식이 전혀 없었으므로 역사나 사회 이야기만 나오면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십상이었다.

홍위는 먼 곳을 지긋이 보며 말을 이었다.


“어쨌든. 어린 내가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었겠어요? 대신들이 나라를 나 대신 주무르고 있었죠. 난 그분들 결정에 따르기만 할 뿐이었어요.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능력이 있고 훌륭한 지 판단할 수 없었죠. 이름만 왕일뿐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바지 사장이었구먼.”

“바지.. 뭐?”

“어, 아니야. 계속해.”


그는 손을 저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게 보기가 싫었던 우리 삼촌 그러니까 수양 대군이, 대신이 나라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이게 말이 되냐, 대신들이 나라를 말아먹겠다는 등의 비난이 이어졌고 왕이 강해져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리고 나의 무능력을… 개탄했죠.”

그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 숨을 길게 뽑아내며 고개를 위로 젖혔다.

“그리곤… 나를 밀어냈어. 아주 처참히…”

“저런…”


홍위의 말에 점점 힘이 없어졌다. 그는 그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 나는 듯 고통스러워했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그 … 수양대군….?’


김단종은 깡패같이 묘사된 수양대군의 모습을 어떤 영화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는 갑자기 홍위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마음속에서 울렁이고 있었다.


‘그 수양대군이 요 쪼그마한 왕을 밀어냈다는 거 아니야?’


“그리고 나를 강등시켜 강원도에 살게 하다가 사약을 내려 죽이려 했었죠.”

“근데 넌 사약으로 죽은 것이 아니잖아!”

“네, 다섯 사발이나 먹었는데 난 죽지 않았어요. 오히려 몸 상태가 좋아지기만 했어요. 그거 지금 생각해도 웃겨요.”

“푸하… 진짜? 대박인데 너 이 자식? 그럴 수도 있다니! 이거 허세 아니야?”

“어.. 아니에요.”


홍위도 어이가 없었는지 그제야 피식 웃었다. 단종의 쏜살같은 반응이 어색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진솔한 대화는 처음이었다.


“사약 맛 어땠는데?”

“쓴데… 마실만 해요.”

“오오오오 호 호호호. 사약, 왕, 수양대군! 네가 조선 시대 사람이라… 이거지? 게다가 왕이었다고?”

“믿기 싫으면 믿지 말던가.”

“그야…. 뭐. 흠. 근데 왜 불구덩이 속에 있었어?”

“사약으로 죽지 않은 나를…”


홍위는 하던 말을 멈췄다. 그들의 계략을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나를 집안에 가둬 두고… 불을 지른 거지.”


그는 손에 묻은 흙이라도 털어내듯 손바닥을 부딪혔다. 그가 뭔가 걱정을 떨쳐 내려할 때 하는 행동 같았다.

“흠… 그렇게 고통 속에 있는 너를 내가 꺼내 준 거고?”

“그렇지요.”


둘은 한 동안 말이 없이 걷기만 했다. 패권 싸움에 진 그의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뽀얀 피부의 그의 팔과 다리는 운동 이라곤 해본 적이 없어 보였다.


귀엽다면 귀엽게 볼 수 있는 그의 동그란 눈, 그리고 보송한 솜털이 아직 벗겨지지 않은 피부를 가진 그에게 왕이라는 직책이 가혹했을 것 같았다. 그가 지녔을 책임의 무게를 어떻게 느꼈는지 그의 넋 나간 표정을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어이!”


아무 곳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시선을 거두도록 단종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고생 좀 하셨겠어 전하.”

“억울…. 해요.”

“뭔지 알아 그 기분….”



3.



한 시간쯤 걸었을까 나무 잎사귀로 빼곡히 덮여 있던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승에서의 하늘 이기 보다 그냥 공기 같았다. 크림색과 핑크 빛을 내는 공기.


그리고 길은 점점 오르막으로 향했다. 오르막에 끝엔 아주 커다란 두 개의 문이 있었다. 하나는 검은색, 다른 하나는 하얀색이었다.


“저기… 저 문.”


홍위가 높은 곳에 우뚝 서 있는 문을 향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래, 저기가 저승으로 향하는 문 인가 봐?”


단종의 말끝이 잠시 떨렸다.


“댁은…”

“형님이라고 불러.”

“형님은 어느 문으로 갈 것 같아요?”

“난….”


단종은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두려워졌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좋은 일을 하고 싶다면 하고 싶었다. 힘들어하고 있는 홍위를 업어서 갈 수 있다면, 아니 그보다 더 심한 그 어떤 고행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었다.


저 문을 향해 가는 발걸음이 죽음을 맞이했던 순간보다 갑절은 더 두려웠다.

오르막길 초입에 다다르자 그들은 심심치 않게 놀랐다. 길은 더 이상 흙바닥이 아니었다. 힘들게 올라가야만 할 것 같았던 길은 사실 계단이 없는 초고속 에스컬레이터였다.


“안전 바를 잡으세요.”


에스컬레이터에서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누가 얘기한 것이지?”

“놀라지 마, 여기서 나온 소리야.”


김단종은 에스컬레이터를 가리켰다.


“안전 바를 잡으세요.”

“안전 바를 잡으세요.”


그들이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들여놓자 그것은 그들의 중심을 잃게 할 만큼 가속하며 올라갔다. 김단종은 휘청 거리는 홍위를 부축해 안전바를 잡게 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거리보다 더 먼 거리였지만 정확히 1분 만에 에스컬레이터는 그들을 문 앞에 도착하게 했다.


“문 앞에 도착한 여러분은 줄을 서길 바랍니다.”


그들 외에 많은 사람들이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족히 100명은 되어 보였다. 사람들이 온 순서대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홍위와 단종도 무리에 맞추어 줄을 섰다.


“내가 호명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세요.”


회색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문지기가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김일성!”

“네.”


키가 크고 마른 어떤 남성이 문지기 앞으로 나왔다. 그가 허접해 보이는 막대기로 머리와 두 어깨를 두드리더니 검은색 문이 반짝였다.


“이쪽으로 가시오!”

“아아아 아아악.”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박지희”

“.. 네..”


소심한 목소리의 여자가 나왔다. 문지기는 막대기로 그녀의 머리와 어깨를 두드렸다. 이번엔 하얀색 문이 반짝였다.


“이쪽으로 가시오.”

“네…”


하얀색 문이 열리자 누군가 꽃이 만발한 정원의 향수를 뿌려 놓은 듯 좋은 향기가 났다.

이후로도 다른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줄을 맞춰 서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없어지자 단종과 홍위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김철지.”


‘마지막이라고?’


남아 있는 사람은 세 명이었는데 그는 김철지를 끝으로 더 이상 호명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둘러 문지기에게 갔다.


“저.. 저희는 왜 불러 주지 않으시죠?”

“너희가 누군데?”

“김단종이요.”

“저는 이홍위요.”

“흠…”


그는 기다랗게 늘어뜨린 수염을 만지작 거리다가 갑자기 소리쳤다.


“시루야!”

“네?”

“너 말고, 내 정보통.”


띠링!

갑자기 하늘에서 하얀 스크린이 펼쳐졌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글자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김꽃, 박호박, 흠.. 어디 보자…. 엥?”

“왜요?”


문지기는 손으로 휘휘 저어 펼쳐진 스크린을 없앤 후 그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너희들 둘 다.. 아직 안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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