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대가
“집에 있는 아내도 생각하셔야죠.”
“…. 네?”
최태수는 죄지은 사람처럼 앉아 있는 아저씨에게 강렬한 눈빛으로 쏘아대며 한쪽 입꼬리를 쓱 올렸다. 당장이라도 돈을 받지 않으면 가족을 이용해서 협박할 생각이었다.
“나이도 있고… 뭐 하나 이룬 것 없는데 독촉까지 받으면 체면이… 사정 좀 봐주세요….”
“그러니까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생각하시고 열심히 갚으셨어야죠. 쯧. 그러게 나이를 어디로 잡수신 거예요. 정신 차리시고 돈 갖다 바칠 생각 안 하고 어떻게 하면 더 불쌍해 보일까 연구하고 오셨어? 꼴에 자식들 학원도 보내는 거 같던데? 참나.”
아저씨는 최태수의 차가운 시선에 당장이라도 눈물이 나올 듯, 구겨진 얼굴로 애원했다.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3일. 딱 3 일줍니다.”
최태수는 반듯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김비서에게 눈빛으로 짧은 사인을 보낸 후 의자에 등을 기댔다. 김비서는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아저씨를 일으켜 세우더니 사무실 밖으로 내쫓듯 그를 밀어냈다.
“가… 감… 감사합니다 감사합..!!”
마지막까지 어필해 보는 아저씨를 뒤로하고 김비서는 차갑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구겨진 소매와 살짝 삐쳐 나온 앞머리를 정리했다. 최태수는 아직까지 들리는 그의 하소연 소리가 귀찮듯 살짝 얼굴을 찌푸려 보았지만 이내 평안한 표정을 유지했다.
최태수의 돈 욕심은 끝도 없었다. 그는 돈이라면 다른 사람의 감정 따위는 개의치 않았다. 돈을 목표로 두고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그의 치열한 인생을 보여주는 사무실 한쪽 벽에는 그가 이루어 낸 업적들, 올해의 브랜드 상 및 특허가 걸려 있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하나쯤 들고 있는 고양이 모양의 텀블러 특허증이다. 불법적인 일만 할 것 같은 그의 인생에 ‘상’이라는 것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김비서는 괜한 괴리감을 느꼈다. 게다가 디자인 상이라니. 중앙 탁자 위에는 사기로 보이는 금융 다단계 표. 여러 가지 계약서 그리고 그가 전혀 읽을 것 같지 않는 몇 권의 인문학 서적들이 뒤 엉켜 있었다. 김비서는 그것들을 차근차근 정리하며 그의 활약을 가늠했다. 얼마든지 사기를 치고도 체면은 차릴 줄 아는 사람일지도...
[백억을 모아 흩어진 우리 가족 다시 함께 사는 게 내 목표야.]
언젠가 난데없이 솔직한 마음을 드러낸 최사장은 아차 싶었는지 김비서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담배를 물고 밖으로 나갔고 김비서는 따라 나가지 않았다. 백억… 흩어진 가족…. 김비서는 본능적으로 그의 본성을 감지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그의 모습은 야비한 하이에나와 같았다. 썩은 고기를 찾아 물어뜯는 동물….
그는 돈이 필요한 사람들의 심리를 적극 활용해 급전을 빌려 주고 더 큰돈으로 받는 일을 오랫동안 했다. 김비서가 그 사채 장부를 발견한 건 최근 일이었다. 그것으로 모은 자본으로 재정적으로 좀 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모집해 함께 건물을 샀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을 투자자에게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돈과 투자자들의 돈을 불렸다. 꽤 큰돈이 오고 가고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했기에 최태수는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했다. 김비서가 함께 일하기 시작한 시점은 건물을 사들이기 시작한 그때부터였다.
쾅쾅쾅 쾅!!!
그때였다. 빚쟁이를 쫓아내고 얼마 되지 않아. 심상치 않은 요란한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김비서가 엉거주춤 일어나려 하자 최태수는 마치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손짓으로 그를 다시 앉혔다.
쾅쾅쾅!!
“문 열어! 내 돈 내놔! 최태수!”
쾅쾅쾅 쾅!
연신 울려 대는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등지고 최태수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창문 밖을 응시했다. 갑자기 빗발치는 항의 전화가 계속 됐다. 밖에서 싸우는 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질 법도 한데 그의 두 눈은 흔들림 없이 고요했다. 몇 달 전 구입했어야 하는 200억짜리 건물이 오랜 시간 매입되지 않았던 것을 눈치채고 투자자들이 몰려온 것이다.
“사장님…”
그런 그의 여유를 바라보는 김비서가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한 시선을 던졌다. 김비서에게 안심시키려는 듯 최태수는 의자로 돌아와 두 발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앉았다. 하지만 오히려 김비서는 그런 최태수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도 끝까지 체면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가 지독해 보였다.
“모든 연락 다 차단시키고 의심되는 서류는 모두 파기한 후 저녁에 퇴근하세요. 뒷문으로 연결된 엘리베이터 사용하시고요.”
“…. 네. 의심되는 서류라면….”
“계약서, 돈이 오고 간 흔적 모두 다요.”
“…네?”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시고요.”
“아.”
“나도 내일부터 여기 있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네.”
김비서는 알겠다는 듯 빠른 목례를 하고 서류 정리를 위해 캐비닛을 뒤졌다. 온갖 계약서와 돈이 오고 간 흔적들을 정리해 모아 파기하기 시작했다. 김비서는 빠른 손놀림으로 종이 무더기를 정리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랬다. 투자자들의 돈을 모두 끌어 쓰고 도망갈 생각을 하다니!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띠링띠링
“여보세요. 어, 도영아.”
최태수는 모든 전화벨에 답하지 않았지만 이도영의 전화만큼은 받았어야 했다. 그는 그의 대학동기이자 가장 큰 투자자였다.
“어, 태수야 무슨 일이야? 갑자기 투자자들이 난리 난 것 같은데?”
“응 도영야. 아무래도 미안하다. 너한테는 말해야 될 것 같은데.”
“응 무슨 일이야?”
“내가…”
“어.”
“너 등 좀 처먹으려고. 하하하하하하하하”
2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