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가족 모두 집에서 게으른 한 때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올해로 여덟 살이 된 해안이는 낮잠이라도 자게 되면 저녁 12시가 될 때가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힘껏 놀아야 되는 불상사가 생긴다. 아이가 늦게 자는 것에 굉장히 예민한 나는 그날 따라 낮잠을 자고 있던 해안이를 깨우라며 남편에게 쏘아 붙였다. 전날 생일 선물로 받은 티니핑 스쿨로 흥분한 탓인지 늦게 까지 자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엔 습관처럼 일찍 일어났기 때문에 피곤이 몰려 왔을 것이다. 물론 내가 깨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토요일엔 전적으로 남편이 육아를 담당하므로 남편에게 책임을 넘겼다. 그리고
“쟤 지금 자면 12시까지 안 잔다!” 라고 겁을 주었다.
남편은 그런 것이 뭐 대수냐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가 나의 쏜살같은 표정에 고개를 휙 돌렸다. 그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해안이 방으로 갔다. 콜콜 자고 있던 해안이의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던지 본인도 데구르르 침대 위를 구르며 해안이를 건드렸다. 장난끼 섞인 말투로 이름을 부르며 온갖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 신나게 잠든 지 얼마 안된 그녀는 누군가의 터치가 시작되자 극심한 신경질을 내기 시작했다. 다리를 쭉 늘어뜨리며 기지개를 한 번 피는듯 하더니 엄청난 속도와 힘으로 자전거 바퀴를 구르듯 아빠를 향해 차기 시작했다. 남편은 깡패에게 맞는듯한 곡 소리를 내었다.
“어어어어으으윽... 해안아 일어나야 되.” 말끝에 목소리가 갈라졌다.
“저리가아아아!!!!”
자고 있었던 아이가 맞았나.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신경질 적인 울부짖음은 설거지를 하고 있던 나의 귀에 날카롭게 박혔다. 그런데 난데없이 조금 웃음이 났다. 밖에서는 개미가 기어갈 듯한 목소리로 어른들께 인사를 하고 어디서나 튀지 않는 세상 착한 아이인데 집에서는 깡패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녀의 자유분방함을 너머 못된짓을 가끔 허락할 정도로 그녀에게 안정감을 제공해 주고 있을 터이다.
"흙..."
아빠는 세상 억울 하다는 듯이 방 밖을 빠져 나왔다. 그는 억울한 표정을 하고 해안이에게 긁힌 자국이라며 길게 상처 난 팔을 내 코 앞으로 내밀었다. 발로 차고, 힘껏 할키기도 했나 보다. 딸한테 한 탕 당한 그 모습이 너무 귀엽고 웃겼다. 설거지 하다 말고 뒤로 돌아서서 웃음을 참을 수 없는 말투로
“그렇게 깨우면 어떡해!” 라고 딸이 들을까봐 아주 작게 말했다.
그리고 딸의 방을 향해 들으라는 듯이 외치며,
“아빠를 때리면 엄마가 혼낼 꺼야.”
그는 입을 삐쭉 내밀며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두 어깨를 으쓱 치켜 올렸다. 그리고 다시 돌아서 딸의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번엔 살며시 옆에 누워 해안이의 어깨를 흔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또 한 번의 곡 소리와 비명 소리가 들렸다. 도저히 먹히지 않는 그의 설득에 나는 "그냥 내비둬..."라고 해안이 방을 지나가며 말했다. 내가 깨울땐 폭력까지는 없었는데 아빠한테만 왕 노릇 하는 저 쪼꼬만 아이. 아빠 무서운줄 모르다니.
시키는 엄마와 따라주지 않는 딸 사이에서 남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찌 할 줄 모르는 긴긴 시간이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옆에서 잠을 청했다. 잠을 자다가 한 지나친 행동을 무의식 중에 깨달은 해안이는 사과라도 하듯 아빠의 품에 꼭 안겨 잠을 다시 청했다. 피곤이 몰려 오는 주말 오후, 그는 마침 자고 싶었는데 잘됐다며 무서웠던 딸을 껴안고 꿀 같은 잠을 잤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란 무엇일까. 규칙과 허용 사이에서 줄다리기 타는 곡예사같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 있는 둘을 보고 나는 한 숨을 크게 쉬었다. 오늘 밤은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