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리링
아침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지만 재현은 이미 잠이 깨어 있었다. 집에 돌아온 재현은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내가 레아랑 사귀다니!’
그가 침대에 누운 채로 기쁨의 발길질을 했다. 핸드폰 문자를 보고 또 보며 음미하면서 중간중간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오빠 잘 들어가요. 오늘 바래다줘서 고마웠어요. 그리고… 저도요. 저도 오빠 좋아해요.
기분 같아서는 그러니까…. 유럽을 정복한 나폴레옹 같았다. 그는 이 행복이 행여라도 도망갈까 봐 휴대폰을 가슴에 움켜쥐고 침대 위에서 공벌레처럼 웅크렸다.
지이잉 지이잉
휴대폰이 재현의 가슴팍에서 세차게 울렸다.
-야, 주하 미국 간단다. 나 어떡하냐.
진성의 문자였다. 간밤에 진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른 아침부터 문자 한 걸 보면 이 친구도 밤을 새운 모양이었다.
-결국 가기로 했데?
-하… 나도 참… 미쳤 나봐. 주책인가! 생각보다 절망적인데?
재현은 ‘나도 할 말이 있는데..’라고 쓰다가 다시 지워버렸다. 절망적인 그의 상황에서 자신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사실 진성의 절망은 재현에게 크게 공감되지 못했다.
‘저 녀석 저러다 말겠지’
재현은 진성의 불행한 문자를 보면서도 연신 미소를 지었다. 레아 생각에 주체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휘파람을 불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문 밖에서 그런 그를 신기한 듯 관찰하고 있는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앗. 엄마.”
“뭐가 그렇게 신났노?”
“날씨가 좋잖아.”
그가 실실 대며 방문을 나섰다.
그들의 사랑과 함께 2학기도 시작되었다. 주하는 예정대로 미국에 가버렸고 진성에게 극적인 드라마는 펼쳐지지 않았다. 진성은 실연당한 남자가 어떤 모습인지 알려 주기라도 하듯 매일 똑같은 추리닝만 입고 다녔다. 레아는 크리스문에게 받은 반지를 돌려주었다.
그때 크리스문은 일이 바빴는지 자신의 말에 귀담아듣는 것 같지 않았고 생각보다 아쉬워하지 않았다고. 했다. 크리스문은 여느 직원과 대화하듯 차갑게 이별을 받아들였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레아는 일말의 미안함을 버릴 수 있었다.
“근데 왜 나야? 크리스문도 멋있으시던데….”
어느 날 재현은 투덜거리는 말투지만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최대한 많이 승자의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크리스문을 이긴 승자.
“음…”
그는 먼 곳으로 시선을 던지며 대답 따위 관심 없는 척했지만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느라 온 신경을 다해 집중했다.
“글쎄…. 몰라? 모르겠네? 그냥 오빠가 더 좋았어.”
다소 심심한 대답이었다. 그가 더 멋있어서, 더 잘생겨서, 더 키가 커서, 더 똑똑해서, 더 치명적이어서, 섹시해서라는 구체적인 이유가 필요했다. 자신의 존재를 찬양받고 싶은 욕망이 간절했다.
“쳇… 뭐야.”
실망스러운 기색을 보이자 레아가 두 볼을 꼬집고 싶을 만큼 귀여운 표정으로 말했다.
“자, 봐봐. 오빠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면 안 돼. 그 이유가 사라지면 사랑도 사라지잖아. 네가 잘생겨서 더 좋다고 치자. 더 잘생긴 사람이 나타나면 널 버려야 해? 네가 돈이 많아서 좋아한다고 쳐. 돈이 없어지면 좋아하는 것도 끝나는 거야?”
재현은 입을 동그랗게 모으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아주 논리정연하군.’ 허둥지둥거려서 보호해주고 싶은 그녀는 사실 보기보다 성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