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에게 간은 없었다
이미지 출처: ChatGPT 생성형 AI — 실제 인물이 아닌 ‘상징적 인물’의 표현입니다.
욕실 문이 안쪽으로 밀렸다. 조명 스위치는 눌리지 않았다. 복도의 백색 불빛이 타일 바닥 위를 덮었다. 수도 밸브가 열리고 쏟아지는 물줄기가 욕조 바닥을 채웠다.
아내의 고개가 돌아갔다. 마루에 선 내 눈에 아내의 시선이 꽂혔다. 두 손이 원피스 밑단을 쥐고 머리 위로 걷어 올렸다. 붉은색이 문턱 옆으로 떨어졌다. 속옷이 벗겨졌다. 맨몸의 아내가 내 쪽을 향해 서 있었다. 내 손가락이 셔츠 단추를 쥐었다. 손가락이 경직되어 두 번째 단추에서 멈췄다. 발바닥이 반걸음 다가왔다. 아내가 남은 단추들을 구멍에서 빼냈다. 셔츠가 어깨뼈 아래로 흘러내렸다. 손이 허리띠 가죽을 당기고 금속 버클이 풀리며 딸깍, 마찰음을 냈다.
욕조의 수면이 올라와 있었다. 아내가 물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나를 마주 본 상태. 내 체중이 욕조 안으로 더해지자, 밀려난 물이 타일 바닥으로 쏟아졌다. 수면 아래서 아내의 무릎뼈와 내 무릎뼈가 맞닿았다. 수위가 가슴 명치까지 올라왔다. 수면 위로 노출된 아내의 맨가슴. 모유가 찬 유선에서 액체 고였다. 하얀 궤적이 물 위로 퍼져나가다 희석되었다.
“미안해.”
입을 빠져나온 내 음성이 타일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아내는 입을 열지 않았다. 수면 아래로 뻗어온 손이 내 오른팔을 감싸 쥐었다. 팔이 물 밖으로 건져지자 팔꿈치 끝으로 물방울이 모여 떨어졌다.
“이거 뭐야.”
검지 끝이 팔 안쪽 피부에 닿았다. 팔꿈치 오목한 관절. 검은 점 하나가 피부 위에 찍혀 있었다. 금속 바늘이 들어온 자국. 짚는 순간 욱신거렸다. 점 둘레로 누른 자국이 번졌다.
“어디서 주사 맞았어?”
“안 맞았어.”
아내의 동공이 내 눈을 파고들었다. 내 시선 역시 그 검은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내의 손가락이 붉게 부푼 피부를 압박하자, 통증이 팔꿈치에서 손목까지 내리 꽂혔다.
“… 몰랐어. 나도.”
아내의 손이 내 팔을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혔다. 피부를 감싼 손은 풀리지 않았다. 골반이 물의 저항을 뚫고 내 쪽으로 밀착해 왔다. 무릎이 내 허벅지 맨살 위로 올라탔다. 젖은 가슴의 무게가 내 가슴뼈 위로 실렸다.
“고이운.”
아내의 입술이 내 귓바퀴 옆으로 붙었다.
“씻고 나올게… 좀만 기다려.”
목소리가 바뀌고 침묵이 빠져나간 자리에 장난기가 돌아와 있었다.
“나오면 아까 거… 제대로 해.”
얼굴 근육이 위로 당겨졌다. 내 팔이 아내의 허리를 감아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밀려난 물 덩어리가 타일 바닥 위로 철썩이며 쏟아졌다. 아내의 배가 내 맨살 위로 밀착되었다. 물기를 머금은 피부가 맞물렸다.
“이나…”
아내의 두 팔이 내 목을 휘감았다. 콧등과 콧등이 부딪혔다. 얽힌 날숨이 입술 위에 닿았다. 내 입술이 아내의 이마 뼈 위로 내려앉았다. 혀끝에 남은 따뜻한 맛.
“고마워, 기다릴게.”
물 위로 몸을 뺐다. 수건으로 몸을 훔치고 옷을 걸쳤다.
욕실 문 앞. 동백 원피스와 속옷이 마루 위에 구겨져 있었다. 원피스를 집어 들었다. 구김을 펴고 반으로 접었다. 접힌 단면을 손바닥으로 눌러 잡았다. 식탁 위에 올려뒀다. 서랍의 레일이 당겨졌다. 안쪽에 숨겨두었던 새 속옷. 태그가 붙어 있는 것. 원피스 위에 포개어 얹었다.
소파 가죽 위에 엉덩이뼈를 댔다. 욕실 안쪽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오른팔 혈관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했다. 소매를 걷어 올렸다. 검은 점 둘레로 피멍이 확장되어 있었다. 점의 중심부. 피부가 찢어진 틈으로 검붉은 혈액이 팔 안쪽 굴곡을 타고 흘러내렸다. 손바닥으로 문질러 닦았다. 닦인 자리에 다시 검붉은 방울이 부풀어 올랐다. 피가 멈추지 않았다.
나무 침대 아래. 시야 안에서 금속 바늘이 꽂힌 낯선 팔의 환영이 겹쳐 들어왔다. 은색 주사기가 바닥에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귀를 막았다.
동화여관. 솟아 있던 하얀 귀. 내 손등을 덮어 눌렀던 여자의 손바닥. 피부와 피부가 맞닿았을 때 치솟던 열. 출혈이 멈추지 않는 팔의 신경이 하나의 방향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식탁 의자에 걸린 수건을 낚아채 출혈 부위를 감쌌다. 셔츠 위로 외투를 덮어 입었다. 소매를 내리자 안감 직물이 피를 먹어 무거워졌다. 식탁 앞. 새 속옷과 원피스가 놓인 자리를 통과할 때, 피가 흐르는 팔을 등 뒤로 숨겼다. 현관 타일.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고 쇠 문고리를 움켜쥐었다. 욕실에서는 여전히 물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철컥. 철문이 프레임과 맞물리며 닫혔다.
소희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머리카락을 밀고 솟아오른 두 귀만 하얗게 떨었다.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 두 번. 세 번째는 오지 않았다. 무언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잠긴 출입문 아래에서 났다. 소희의 상체가 일으켜졌다. 솟아오른 살덩이 위로 젖은 머리카락을 뭉쳐 틀어 올렸다. 겉옷을 두르고 로비로 나섰다.
유리문 밖. 성인 남자의 육체가 문틀에 기대어 꺾여 있었다.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유리를 당겼다. 지지대를 잃은 체중이 안쪽으로 쏟아졌다. 소희의 양손이 남자의 가슴을 받쳐냈다. 핏기가 증발한 입술. 동공의 초점은 풀려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고이운 씨.
입이 벌어졌다.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소희의 어깨 위로 이운의 팔이 얹혔다. 통제력을 잃은 몸이 소희의 어깨뼈를 짓눌렀다. 로비 합판 바닥을 끌며 방 안으로 이동했다. 이운의 신발이 바닥 장판을 긁었다. 구겨진 이불 위로 등뼈가 닿았다. 근육의 긴장이 풀리며 몸이 바닥으로 꺼졌다. 외투 소매 끝단이 검붉은 혈액을 머금어 번들거렸다. 옷을 걷어내자 팔꿈치 오목한 곳. 검은 점 하나. 찢어진 피부 사이로 핏방울이 맺혀 이불 위로 흘렀다.
흰 거즈 여러 개로 출혈 부위를 덮었다. 몇 장을 더 포갰다. 소희의 양손이 팔을 감싸 쥐었다. 거즈 위로 손바닥 무게를 실어 눌렀다. 맞닿은 피부에서 발생한 열기가 손바닥에서 가슴을 타고 올랐다. 귓바퀴 뿌리까지 치솟고 두 개의 하얀 귀가 팽팽하게 섰다. 거즈를 적시던 검붉은 피가 멎었다. 소희의 손바닥 지문 사이로 이운의 혈액이 엉겨 붙어 있었다.
마당이 있는 집. 아직 익지 않은 감이 달린 마당. 그 집에서도 한 사람이 쓰러졌다. 팔꿈치 안쪽, 같은 자리에 점이 찍혀 있었다. 검붉은 피가 멈추지 않았다. 소희의 작은 두 손이 그 팔을 감싸 쥐었다. 열기가 치솟았고, 피가 응고되었다. 그 사람도 소희의 솟아오른 살덩이를 눈꺼풀 안쪽에 담을 수 있었다. 매일 머리카락을 빗어 묶어 주던 그는 그 뒤로 사라졌다.
소희의 손이 이운의 손을 쥐었다. 피부 밑 손등뼈의 골격이 선명했다. 이운의 손가락이 소희의 손바닥 안으로 들어왔다. 이불을 끌어당겨 가슴 위를 덮었다. 이운의 머리뼈가 베개 위에 놓여 있었다. 소희의 눈에서 밀려났던 물이 말라붙은 자리에.
소희는 이불 옆에 앉았다. 무릎을 당겨 가슴에 붙이고 벽에 등을 기댔다. 사람 하나가 누우면 옆에 앉을자리만 남았다. 숨소리가 두 개. 소희의 긴 귀가 이불 쪽으로 기울었다. 떨리는 귀. 소희의 눈꺼풀이 닫혔다. 몸이 서늘한 판자 바닥으로 건너가지 않았다.
욕실 거울 표면의 수증기가 걷히고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이나의 얼굴 윤곽이 유리 표면에 맺혔다. 양쪽 입꼬리 근육을 위로 당겼다. 눈 둘레가 움직이지 않았다. 입술이 떨렸다. 거울 속 여자가 떨고 있었다.
두 손바닥이 아래에서 가슴의 무게를 떠받쳤다. 젖이 빠진 쪽이 손바닥 안에서 말랑하게 눌렸다. 차 있는 쪽이 손가락 사이를 밀었다. 거울 속에서 가슴이 손안에 모였다. 욕조 안에서 이운의 가슴뼈에 눌렸던 무게. 손에 힘을 줬다. 살이 손가락 사이로 불거졌다. 나오면 아까 거, 제대로 해. 그 말을 한 입이 거울 속에서 벌어졌다. 수건을 머리에 둘렀다. 거울에서 눈을 떼고 문을 열었다.
거실 천장의 백색 조명. 이운이 없었다. 소파 쿠션 위에 검붉은 얼룩. 거기서 흘러내린 줄기가 마루 위에 고여 있었다. 핏자국이 소파에서 현관까지 찍혀 있었다. 이나가 그 위를 걸었다. 맨살에 거실 공기가 달라붙었다. 젖은 머리에서 물이 등뼈를 타고 엉덩이 아래까지 내렸다.
현관 타일 위. 이운의 운동화가 빠져 있었다. 휴대폰 통화 버튼을 눌렀다. 거실 가죽 소파 방향에서 스피커 소리가 울렸다. 가죽 틈새에서 액정 불빛이 깜박였다. 진동 모터가 핏자국이 묻은 가죽 표면을 때리며 마찰음을 냈다. 틈새로 손을 넣어 금속 기기를 빼냈다. 화면에 자기 이름이 떠 있었다.
방 안쪽에서 아이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휴대폰을 쥔 손이 내려갔다. 무릎이 마루를 쳤다. 손바닥이 짚이고 가슴이 무릎 쪽으로 무너졌다. 수건이 풀려 떨어지고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을 덮었다. 등뼈가 하나씩 솟았다. 백색 조명이 젖은 등을 비췄다.
참았던 숨이 터져 나왔다. 한 번. 또 한 번. 아이 울음과 겹쳤다. 맨가슴이 마루에 눌렸다. 핏자국 위에 눈물이 떨어져 검붉은 것이 번졌다. 시선이 손끝 너머로 갔다. 식탁 위. 동백 원피스가 개어져 있고 그 위에 새 속옷이 가지런히 올려져 있었다. 태그가 달린 채.
아이 울음이 높아졌다. 발바닥이 마루를 밀어내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를 안아 올렸다. 가슴 맨살 위로 얼굴이 부딪혔다. 입이 벌어지며 유두에 닿자 빨아들이는 힘이 안쪽을 당겼다. 아이를 안은 채 거실로 돌아왔다. 식탁 앞에 섰다. 붉은 원피스와 새 속옷. 핏자국은 거기엔 없었다.
욕실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욕조에 받아둔 물이 빠지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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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잊혀서는 안 될 역사의 상처를 기억하며 쓰였습니다. 품 속 인물과 사건은 모두 허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