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볕 Nov 14. 2022

꼬마 아이가 내게 준 것


어느덧 11월 둘째 주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미세먼지 가득한 뿌연 하늘에 잠깐 망설이다 외출용 옷으로 갈아입는다. 한동안 전자책만 보다 보니 종이책의 질감이 그리워져 산책도 할 겸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 가는 길은 단풍이 한창이다. 늦가을에 접어들면서 썰렁하고 단조로운 풍경에 익숙해져 가고 있던 차에 이렇게 불쑥 화려한 가을의 향연을 맞닥뜨리니 얼떨떨함도 잠시, 곧 반가움이 솟아오른다.


책을 빌리고 나오는데 귀여운 꼬맹이 한 명이 내 앞을 가로질러 뛰어간다. 제 얼굴보다 큰 나뭇잎을 들고 까르르 웃으며 달려가는 해맑은 모습에 마음속의 무언가가 꿈틀 한다. 허리를 숙이고 길거리에서 뒹굴고 있던 낙엽들 중 깨끗한 걸 골라 들었다. 이렇게 나뭇잎을 주워 보는 게 얼마 만인지. 오랜 시간 봉인해두었던 동심이 깨어난다.



오늘의 수확물은 플라타너스 잎과 귀룽나무 잎. 플라타너스 잎은 웬만한 성인 얼굴보다 더 크다.



주워온 잎을 테이블 매트 삼아 저녁상을 차렸다. 돼지고기 가지 덮밥과 해물 순두부찌개. 부드럽게 씹히는 가지와 청양고추를 듬뿍 넣은 매콤한 양념이 잘 어울린다.


그리고 오늘의 아점.

신선한 야채와 빵, 그리고 계란.



잎사귀 두 장을 주워왔을 뿐인데 식탁에 가을이 가득하다. 하루 새 더 말라서 바삭바삭해진 나뭇잎은 한층 깊고 진한 색으로 탈바꿈했다. 자연이 곁에서 숨 쉬는 것 같다. 우연히 만난 꼬마 아이 덕분에 집 안에 가을이 들어왔다.


※ 블로그에 적었던 짧은 일기를 브런치에도 올려봅니다 :)








작가의 이전글 도서관은 늘 그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