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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볕 Jul 28. 2022

도서관은 늘 그랬다

잊고 지내던 소중함

꼬르륵!

도서관 출입문을 밀며 들어서는데 귀에 들리는 소리. 귀찮다고 아침을 걸렀더니 몸이 항의라도 하듯 요란한 신호를 보내온다. 종합자료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식당으로 향한다. 무인 결제 메뉴란에서 떡라면을 선택하고 카드 투입구에 카드를 넣는다. 드르륵! 주문서가 출력되고 십여분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라면 한 그릇이 내 앞에 놓여있다.



'떡라면이라니... 취향도 참 촌스럽지.'

젓가락으로 면발을 집어 입으로 가져가며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처럼 유독 배고픈 , 간단히 한 끼 해결하기에는 떡라면만 한 게 없다. 그냥 라면으로는 양이 안 찰 것 같아 무인 결제기의 치즈라면이나 계란 라면 버튼 앞에서 망설이던 내 손은 결국 떡라면을 선택했다. 국물이 탁해지는 게 싫기도 하거니와 떡 몇 조각이 더 들어가서 든든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떡은 밀가루가 아닌 쌀 아닌가.^^



든든하게 라면 한 그릇을 비우고 식당을 나서는데 오른편에 자리한 카페가 보인다. 메뉴판을 보니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1500원.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저렴한 가격에 자석에 이끌리듯 발걸음향한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작은 규모의 카페이니 얼음 상태가 비위생적일 수도 있을 것 같아 음료 주문한다.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맞냐고, 60대 정도로 보이는 나이가 지긋한 바리스타분이 여러 번 확인한다.



"네, 맞아요."

한여름에 뜨거운 커피를 주문하면 으레 받기 십상인 의아한 눈빛을 떨쳐내면서 대답한 후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손님들은 모두 아이스 음료를 마시고 있다. 별난 사람이 된 것 같아 약간의 머쓱함을 느끼고 있을 때 음료가 나왔다는 안내가 들린다. 좀 전의 바리스타분이 갓 내린 에스프레소 샷을 뜨거운 물 위에 붓고 뚜껑을 닫은 후 조심스럽게 건넨다. 떨리는 두 손... 수전증이라도 있으신 걸까. 세월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투박한 손에 감싸인 커피를 보니 찌르르한 감각이 마음을 훑고 지나간다. 행여나 음료를 쏟을세라 조심스레 받아 들고 꾸벅 인사를 한다. 커피를 마시며 주방 공간을 살펴보니 커피머신 상태가 깔끔하고 얼음도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는 것 같다.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괜한 선입견을 가진 것 같아 미안해진다.



"하아, 덥다."

전력사용량 줄이기 캠페인이라도 하는 걸까. 약한 에어컨 바람으로 인해 카페 안은 후덥지근하다. 거기다 뜨거운 음료까지 손에 들고 있으니  더울 수밖에... 괜히 의심해서 따뜻한 커피를 시킨 탓이려니, 하면서 한 모금씩 마시는데 저렴한 커피치고는 맛이 나쁘지 않다. 게다가 차가운 얼음에 커피 맛이 가려지지 않아서 . 새로운 발견인걸? 앞으로도 여름에 종종 뜨거운 커피를 시키게 될지도 모르겠다.



커피를 다 마시고 종합자료실로 올라간다. 새로 단장한 도서관 내부는 매우 쾌적하다. 장서가 빼곡히 들어찬 공간에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검색용 PC에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입력한 후 도서의 위치가 담긴 청구기호표를 받아 들고 서가에 꽂힌 책을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은 꼭 보물 찾기를 하는 기분이다. 소중하게 책을 집어 들고 빈자리에 앉아 한 장씩 페이지를 넘기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이렇게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얼마만일까. 요즘은 주로 e북을 읽거나 도서 플랫폼을 이용하다 보니 도서관에 올 일이 거의 없다. 사람들이 빚어내는 백색소음 속에서 종잇장을 사락사락 넘기며 책을 읽고 있자 나도 이 공간의 완벽한 일부가 된 것 같다. 



생각해보면 도서관은 늘 그랬다. 주머니가 가벼웠던 취업준비생 시절부터 오늘까지,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밥 사 먹고 커피 마시고 책도 볼 수 있도록 그 넉넉한 품을 내어줬다. 오랜 기간 잊고 지내다 오늘처럼 시에 들러도 싫은 내색 없이 반겨준다. 떡라면의 든든함으로, 노년의 바리스타가 내려준 아메리카노의 정성스러움으로, 쾌적하고 더 넓어진 공간으로.




끼익! 문을 밀고 나서며 뒤돌아보니 저뭇해지는 하늘 아래 도서관이 우직하게 버티고 서 있다. 언제라도 다시 오라는 듯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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