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결혼한 지 햇수로 16년 차가 되었다. 풋풋했던 30대의 남녀는 이제 흰머리가 듬성듬성 보이는 중년의 부부가 되었다. 하지만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늙지 않았다고 외치며 여전히 남편과 알콩달콩 살고 있다. 알콩달콩. 이 말을 중년의 부부에게 붙여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우리 부부를 보며그렇게 말하니 나도 한 번 써본다. 아마 이건 아이가 없는 무자녀부부라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부부에서 부모로 거듭나는 그 지난하고 힘든 과정을 겪지 않아서 아직까지 처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지도.
남편은 가끔 대하구이를 먹는 내 모습을 보며 예전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새우가 그렇게 맛있어?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게 새우 껍질을 열심히 까더니만ㅋㅋ."
그는 또 우리의 두 번째 데이트를 떠올리고 있나 보다. 그날은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갔다가 당시 한참 유행하던 프랜차이즈 뷔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별로 먹을만한 게 없어서 새우와 연어를 접시에 가득 담아 들고 자리에 앉았더니 남편의 눈이 둥그레졌다. 그가 놀라서 쳐다보든 말든 나는 열심히새우살을 발라 입에 넣었고(남편 입에 넣어주기에는 아직 서로 어색한 사이였다) 그런 모습이 남편 눈에는 귀여워 보였다고한다(남편 표현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래서 십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새우를 먹는 내 모습을 보면 그날의 일을 소환하며 놀려대곤 한다.
그렇다면 나에 대한 또 다른 기억은 없을까?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어봤다.
"자기야, 나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어땠어?"
"느낌? 음... 그냥 평범했지."
"뭐???????????"
목소리가 급격하게 올라간다. 아니, 그럼 평범한 여자한테 첫날부터 경기도 양평을 가자고 한 거야?(이 내용은 아래에 첨부한 첫 만남 이야기를 클릭하시면 알 수 있어요.) 설령 첫인상이 평범했다 하더라도 '예뻤다'라는 립서비스도 못하나. 그런 자기는 뭐 대단히 잘생겼는 줄 아나. 칫, 그냥 일 잘하는 과장님같이 생겼었다고!! 기분이 상해서 아무 말 않고 있었더니 남편이 덧붙인다.
"백화점 앞 광장에서 처음 봤을 때는 얼굴을 잘 못 봐서 그냥 평범하다고 생각했어. 근데 카페에 마주 앉아서 이야기할 때웃는모습이 예뻤어."
아니, 병 주고 약 주는 건가. 살짝 상했던 기분이 스르륵 풀린다. 그렇게 소개팅에서의 내 이미지관리용 미소에 콩깍지가 씐 남자와 그의 편안함에 마음을 열었던 여자는16년째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처음의 설렘은 사라졌지만 친구이자 평생의 동반자로서 서로의 곁을 든든히 지켜주며.
길에서 손잡고 걸어가는 노부부들을 종종 본다. 구부정한 자세로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애틋하면서도 아름답다. 긴 세월을 함께 해 온 끈끈함과,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인생의 황혼 녘을 지나는 그 모습이내 눈길을 오래오래 붙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