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한 번쯤 물어보는 질문이다. 학교, 직장, 모임 등에서 처음 대면했을 때 통성명을 하고 나서, 좀 더 가까워지기를 원하면 으레 나이를 묻게된다. 아마도 반말과 존댓말이 구분되는 언어권이다 보니 나이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입을 열기가 조심스러워서 그런 것이아닐까.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우리 사회에는 아직까지 나이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어린 사람들에게 연장자로서 대접을 받는 대신 밥이나 술을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지만 나이에 따라 자연스레 역할이 정해진다. 이런 경향은 여성들보다 서열을 중시하는 남성들 사이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요즘은 이런 분위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아서 점점 사라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나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존댓말은 상대에게 예의를 갖추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고자 할 때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외국에서 지낼 때 편했던 점은 존댓말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를 만나도 나이를 물을 일이 거의 없었다. 외모나 행동으로 대략적인 나이대를 짐작만 할 뿐 대화가 통하고 관심사가 맞으면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이에서 자유로워지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한국에서라면 40대 기혼자가 클럽이나 펍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핼러윈 파티에 참석하는 일이 드물 테지만 보라카이에서는 모든 게 가능했다.다른 인종보다 좀 더 젊어 보이는 동양인 외모의 덕을 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나이를 크게 따지지 않는 분위기 덕에 편하게 어울릴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 어학원 친구들과 주 1~2회 정도 스테이션 2 근처에 있는 술집에 몰려가서 술을 마시거나 게임을 하곤 했다. 우리가 즐겨 찾던 곳은 'Frendz'라는 리조트 겸 술집이었는데 이름처럼 프렌들리 한 분위기를 가진 이곳에서 국적을 불문하고 다 같이 어울려 흥겹게 놀았다. 술을 마시면서 포켓볼을 치거나 게임을 했고, 간혹 술집 측에서 전문 진행자를 불러 파티를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숫기 없는 줄만 알았던 남편은 이런 모임을 즐거워해서 자주 참석했다. 어느 날 친구들과 다 같이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 마침 국가별 장기자랑 대항전이 열렸다. 남편이 호기롭게 참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순서가 되어 'K-POP의 나라에서 온 참가자'라는 낯 뜨거운 사회자의 소개와 함께 무대에 등장했다. 사람들은 처음에 남편을 보고 다소 의아해하는 듯했으나(누가 봐도 아이돌 하고는 거리가 먼, 모범생처럼 생긴 외모의 동양인이니) 물 만난 고기처럼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모습을보더니 이내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남편이 무대를 마치고 내려왔을 때 열띤 퍼포먼스에 감동한 사람들이 줄을 지어 남편과 셀카를 찍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아마도 지구상 어딘가 누군가의 SNS에 '보라카이의 뜨거운 추억' 같은 제목과 함께 우리 부부의 사진이 올라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보라카이의 또 다른 추억으로 핼러윈 축제가 떠오른다. 10월 중순이 되니 보라카이 곳곳에 기괴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장식들이 내걸렸다. 미국 식민지배의영향 때문인지 필리핀에서는 핼러윈이 큰 축제 중의 하나였고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축제 준비에 열과 성을 다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었다.(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핼러윈을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젊은 층에 국한된 이벤트 느낌이다.)
우리가 다니던 어학원에서도 핼러윈 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현지인 교사들은 들뜬 분위기 속에서 까르르 신이 나서 웃어댔다. 축제 당일 남편과 나는 약간은 어색한 기분으로 근처 문구점에서 산 붉은 뿔 조명 머리띠를 하고 핼러윈 메이크업을 한 후 어학원 식당(강당 용도로 사용되는 공간)으로 갔다. 겸연쩍어하는 우리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이미 축제 분위기에 흠뻑 취해 있었다. 좀비, 후크선장, 마법사, 일본 귀신 등 다양한 캐릭터로 분장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다 같이 모여 치킨과 구운 생선, 과일, 볶음밥 등을 나눠 먹고 맥주를 마셨다. 술이 어느 정도 오른 상태에서 게임이 시작되었다. 림보게임, 신문지 게임, 춤 대결, 분장 대결을 하며 분위기는 점점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긴 쪽에서는 환호의 함성이, 진 쪽에서는 아쉬움의 탄식이 터져 나오며 강당을 채웠다. 빨간 조명과 요란한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강당에서 핼러윈의 밤은 점점 무르익어갔다.
그때가 벌써 3년 전이라니 새삼 세월이 참 빠르다는 것을 느낀다. 나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홀가분하게 지내던 순간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나이에 맞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문득 한 번씩 시끌벅적했던 술집에서의 파티와, 뜨거웠던 핼러윈의 밤이 생각난다. 가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장소와 사람들... 인생은 다양한 경험을 하는 만큼 더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당시에는 무모한 결정이라고 여겨졌지만 돌이켜보니 잘 한 선택이었다. 언젠가 다시 일상을 벗어나 가슴 뛰는 경험을 하게 될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