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y.bn - Painting (Prod. MERCURY)
우린 사소한 영역다툼의 연속이었다. 서로를 각자의 색으로 물들이지 못해 안달 난 사이였다. 처음엔 서로의 색깔을 존중하다가도 나의, 너의 영역에 조금만 침범하면 우린 견디지 못했다. 우린 끊임없이 섞이다 까맣게 물들었다. 보이지도 않는 그곳에서 너와 난 서로를 할퀴어간다.
이렇게도 다른 우리가 만났던 건 어쩌면 사귀어본 적 없어서 그랬나 보다. 달달한 그땐 미처 몰랐다. 널 만나며 마셨던 핫초코가 우리였다는 걸 너와 나는 몰랐다. 온전히 섞이지 않아 밑에 남아있는 진한 자국들이 우리가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엔 이해했다. 우리가 똑같을 수는 없으니까. 조금의 차이는 있더라도 그 차이엔 어느 정도의 완충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중간지점은 아지랑이처럼 존재하기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지쳐가는 너의 표정에서 나도 무기력함을 느꼈다. 우린 그저 서로의 영역에서 헤엄치다 만나 지쳐 가라앉거든 물속 얘길 전하는 게 차라리 나아보였다.
너의 색에 날 섞고, 나의 색에 널 섞었더니 결국엔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매져갔다. 서로 어떤지 중요하지 않았다. 이젠 지쳐버린 우리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서로의 영역에서 우린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언젠가 내가 너를 이해하고 네가 나의 발걸음을 맞출 그럴 때가 오겠지. 그러니 잠깐 동안은 이렇게 지냈으면 싶다. 조금만 떨어져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