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라스윗 - 서울의 밤
어렸을 때 나는 이사를 자주 갔다. 아버지의 근무지가 곧 나의 집이 되었다. 잦은 이사 때문에 나는 어디를 가던지 1~2년 뒤에 새로 갈 곳을 생각했다. 이번엔 바다일까, 도시일까? 지금이야 수단이 발달했지만 그때는 이사가 곧 이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별은 예정된 시한폭탄인 샘이었다. 그래서 내 옛 기억에는 이렇다 할 정든 집이라는 개념이 없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 놀이터에서 아이 두 명이 싸우는 걸 봤다. 저녁을 먹어야 한다며 집으로 가려는 아이와 좀 더 놀고 싶은 또 다른 아이. 둘은 티격태격하다 산책하시던 할아버지의 중재로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웃음이 나왔다. 저 아이들에게 집은 어떤 존재일까. 신발을 벗고 들어설 때 나는 구수한 밥 냄새에 환히 반겨주는 아버지와 앞치마를 두르신 어머니, 그리고 경우에 따라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투정을 부릴 형제들이 있겠지. 부럽다. 나에게 집은 온전히 나 혼자만의 공간이 되었다. 집이 불편한 건 아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집에 크게 정이 들진 않는다. 잠시 조금 오래 머무르는 휴식 공간이다. 그뿐이다.
항상 바라 왔다. 언젠가 힘든 날, 돌아갈 작은 집 하나 있었으면,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를 따스하게 반겨줄 그런 집에 살자며 자라왔다. 그런 집은 여전히 나의 상상 속에나 존재하고 있다. 만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어렸을 적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에게는 그런 집이 있었을까. 항상 해 질 녘 밥 짓는 냄새를 맡으며 흙 놀이하다 엄마의 부름에 하나 둘 사라져 간 그 아이들에게 집이란 어떤 존재였을까.
작은 두 손으로 모래성을 쌓고 자유롭게 미끄럼을 타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자신의 집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엄마의 부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엄마가 또는 아빠가 되어 아이들을 부르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고.
이곳의 밤은 참 화려하다. 불이 꺼지지 않는 건물들과 바삐 움직이는 차, 쉴 새 없는 스마트폰들. 매일이 낯설다. 이렇게 화려한 곳에 내가 빛날 수 있을까. 그러고 내가 방전됐을 때 나를 토닥거려 줄 집은 어딨을까. 한참을 집 앞에서 망설이다 들어간다. 어두운 방과 적막한 공기. 나는 듣지도 않을 라디오를 켠다. 그래야 집에 사람 소리라도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