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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Mar 08. 2016

파리 가는 길에서

낯설고 두려운 첫 경험을 겪고 나면

룩셈부르크에서 파리로 뭐 타고 갈까

M와 N은 일과 학교를 갔다. MN이 떠난 텅 빈 집에서 주인도 아닌 내가 홀로 남아 아침을 먹으며 한 손에는 빵을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파리에 갈 방법을 찾는다. 비행기나 기차를 타면 룩셈부르크에서 파리야 먼 거리도 아니다만 가격이 부담이다. 80유로는 내겐 호화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돈이니까. 차선책으로 버스를 알아보았으나 룩셈부르크에서 파리로 가는 버스는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카쉐어 서비스인 블라블라카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여행을 하면서 많이 들어보았지만 이용해 본 적은 없었다. 아무래도 모르는 사람의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게 겁이 났다. 나를 태우고 다른 곳으로 가면 유럽 대륙에 있는 한국인을 무슨 수로 찾느냐 말이다. 이렇게 시작된 상상은 극에 치달으면서 카쉐어는 거의 스릴러 공포 수준이 되었으므로 엄두도 내지 않았다. 비싼 항공기와 기차 그리고 없는 버스 앞에서는 별 수 있나. 되지도 않는 상상을 뒤로하고 그냥 이용해 보기로 한다. 별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아니면 80유로 내고 비행기를 타던가. 


블라블라카 첫 경험

내가 결심만 하면 바로 이용할 수 있는지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룩셈부르크에서 파리로 가는 적당한 차가 없다. 이틀 후에나 떠난다고 친구들에게 말해두었는데 블라블라카 앱은 오늘 당장 떠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여기에는 적지 못할 친구들의 사정으로 지쳐있던 상태라 이참에 빨리 떠나자고 마음먹은 후 M과 N에게 연락을 했다. 문자로 띡 작별 인사를 남기고 싶지 않았지만 다시 만난다는 확신을 어느 정도 가진 채 미안한 마음으로 연락을 했다. 조금은 씁쓸한 마음으로 캐리어를 끌고 예약한 장소로 갔다. 앱에서 약속한 시간은 오후 3시였지만 메신저로 운전사는 오후 2시 30분에 만나자고 하여 알겠다고 대답한 후 2시 20분에 미리 나가 있었다. 그런데 정작 30분 일찍 만나자고 한 운전자는 3시가 넘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이대로 오지 않으면 나는 다시 돌아가야 하나. 초초함이 점차 포기로 바뀔 때쯤 내 앞으로 차 한 대가 선다. 그리곤 나에게 반대편으로 오라고 한다. 그들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면서도 난 그들이 맞는지 정상적인 사람인지 의심을 거듭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사이트에 올라온 차와 종류도 다르고 인상을 팍 쓴 채 프랑스어로 소리치는 두 명의 건장한 남자들을 보자니 움찔할 수밖에.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차에 냉큼 올라탔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블라블라카를 처음 이용하는데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서 나타난 건 둘째치고 여자라고 등록되어있는데 남자가 그것도 두 명이나 나타나서 놀랬다고. 그랬더니 그는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차 딜러로 유럽 전역을 다니며 블라블라카를 자주 이용하는데 나처럼 질문을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한다. 영어가 서툰 그와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나는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의 이름은 헤어질 때가 돼서야 알았다. 그의 차를 탈 때 나는 혹시나 하는 상황에 대비해 내가 탄 차 번호와 운전사 정보를 룩셈부르크에 사는 친구한테 보내 놓았지만 그걸 쓸 일은 다행히도 없었다. 나는 그가 운전하는 동안 마음을 푹 놓고 여행을 했으니 말이다. 말이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우린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갔다. 그는 모로코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태어난 프랑스 사람인데 모로코와 유럽 전역을 다니며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나도 사업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니 그냥 관심만 가지지 말고 꼭 실천해보라고 조언한다. 말이 쉽지라고 생각하는 걸 알았는지 실패해도 괜찮다며 용기를 준다. 가끔은 밑도 끝도 없는 너는 할 수 있다는 조언이 힘이 될 때가 있다. 오후 7시 도착 예정이었던 파리는 결국 오후 9시가 다되어 도착하였다. 그가 호스텔까지 데려다준다고 하며 그 근처에 살고 있는 친구를 중간에 픽업했다. 그들은 나에게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하였지만 로드트립을 찐하게 마친 나는 피곤하여 호스텔로 돌아갔다. 그는 나를 호스텔 문 앞까지 바래다주었다. 

저녁 식사를 하러가서 인증 사진을 보내온 R과 M / 파리 가는 길 / 호스텔에서 만난 사람과 와인 한 잔


새벽 2시까지 밝은 bar / 호스텔에서 바라본 운하

인생을 살다 보면 낯선 것 투성이다. 당연히 두렵지만 부딪혀야 하는 순간이 온다. 피하고 싶고 피할 수 있다. 그럼 편하겠지. 그런데 나가고 싶지 않더라도 일단 나가면 후회 없는 최고의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블라블라카를 타고 M과 로드트립을 하고 그의 친구 R를 만나 파리를 여행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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