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57점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았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일터가 바뀌었다.
전국을 떠돌다 왔던 이력이 있으니 서울 안에만 자리하면 다행인 걸까. 서울 지리에 무지했던 나는 허둥지둥 카카오맵을 검색했는데 왕복 세 시간 반의 거리다. 지옥의 출근길이 열렸다.
첫 출근길, 잠들기 전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한 시간 반동안 어떤 옹골진 활동을 할 것인가. 밀리의 서재에 읽을 책을 다운로드하고, 정리할 가계부와 위클리 플랜을 리스트업 했다. 그래! 오히려 이 출근길이 기회일 지도 몰라! 출근 전 후다닥 준비하고, 일하고, 퇴근하면 밥 먹고 잠만 자고 있잖아. 강제 연행되는 이 시간이 유익하게 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일지도 몰라!
포부는 멋들어졌지만 출근 전쟁길에 지친 나는 3초 컷으로 곯아떨어졌다. 한 번쯤 맞은편에 앉은 젊은 청년이 수면 안대와 목베개를 끼고 잠을 청하는 것을 보았는데, 진정 슬기로운 출근길이라고 생각했다.
직주근접으로만 5년을 살아온 (대부분 사택이 주어졌다) 나는 대곤경에 처했다. 마치 서울 중심으로 출근을 하는 경기도민이 된 느낌이랄까. 아,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에서 배우 김지원 님의 역할이 떠올랐다. 서울로 출퇴근하다 지쳐서 끝내 퇴사를 하고 추앙을 바라는 경기도민. 사실 그런 내용만은 아니지만, 새삼 그녀의 복잡한 심경이 뼛속까지 느껴졌다. 퇴근이 어려워 회식까지 기피했던 그녀. 나는 회식이 끝나고 새벽 2시쯤에야 귀가할 수 있었다.
나는 어떻게 출근하고 있는가.
직선거리로 서울의 끝과 끝에 위치, 심지어 대각선이다.
거리가 먼 만큼 출퇴근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가 있는데 일단 자가는 없으니 PASS. 버스는 2시간 34분가량이 소요되는 것을 확인하고 지하철을 선택했다. 지하철 루트마저 알록달록이다. 최단 거리를 기준으로 카카오맵 추천 경로를 선택했다. (하, 추천 경로 또한, 가지각색이다.) 한 달간은 적게 걷는 경로를 택했다.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것이 있기 마련. 8호선> 2호선> 6호선의 화려하고 인기 좋은 호선이었던 추천 경로는 체력적 정신적으로 한계가 왔고, 한 달 뒤 두 번째 루트를 선택했다. 바로 8호선> 3호선의 코스! 아주 오랜 여행을 하는 루트지만 끝에서 출발하는 만큼 착석이 가능하다는 것, 환승 시 민족 대이동의 혼돈을 겪지 않아도 되는 만족스러운 코스였다. 물론 해당 역에 하차 이후 15분에서 20분은 걸어야 했지만.
기후동행카드는 나의 무기이며, 지하철에서 꾸벅이는 수많은 동지들과 전쟁터로 나선다. 지기만 하는 이 싸움에서 언젠가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 믿으며 내일도 출근을 한다. 제군들, 힘을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