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 앉으면 제법 나온 배 때문에 바짝 당겨 앉기가 어려워졌다. 이제 막 20주와 21주 사이인데 가끔씩 숨이 찰 만큼 배가 커져가고 있다. 엄마가 나를 가진 사진을 보면 7, 8개월사진인데도 여리여리하고 배가 귀엽게 뽈록 하고 나온 모습인데, 나는 어찌된 일인지 벌써 이렇게 두리둥실한 몸을 가지게 되었다. 지난주 까지만 해도 큰 맨투맨을 걸치면 어떻게든 티가 잘 안나는 정도였는데 이번주가 되니 아기의 존재감을 더 이상을 숨길 수 없게 되었다.
남편은 내 배가 이렇게 나오고 있는게 볼 때마다 신기하다고 한다.
“자기 배가 이렇게 나오다니.”
“내가 이런 배를 보는 날이 오게 되다니.”
“이 안에 아기가 있는 거라니.”
특별한 노력을 해서 나온 배는 아니지만 이런 남편의 반응을 볼 때면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기분까지 들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야! 하는 마음이 귀엽고 귀했다. 이 시기만큼 내가 모두에게 관심 받고 대접받는 때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은 혼자 외출해 내 순서를 기다릴 일이 있었다. 앉을 수 있는 의자가 3개가 있었고 나는 다행히 가장 먼저 도착해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할머니 한 분이 옆에 와 앉으셨고, 그리고 다음 할머니가 도착해 그 옆에 앉으셨다. 얼마쯤 기다렸을까 세 번째 할머니가 오셔서 옆에 서 기다리시길래 얼른 자리를 양보해 드렸다. 할머니는 옆에 선 내 배와 얼굴을 한참 번갈아 보시다가, 허리를 톡톡 치시면서 혹시 아기 가졌어? 물으셨다. 모르는 사람이 아기 가졌는지 물어본 게 처음이라 놀라기도 하고 기분 좋기도 하여 맞다고 얼른 대답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할머니 세 분이 전부 일어나시면서 서로 자리에 앉으라며 손을 휘저으셨다. 이런 반응일 줄 몰라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난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몇 차례나 말씀드렸다. 남들이 보기에 네 명이 일어나서 자리 셋을 두고 서로의 등을 떠미는 모습이 의아했을 것 같기도 하다. 지금껏 내가 양보를 받아야 하는 상황은 겪어보지 못했는데, 그것도 등이 굽은 할머니들께 양보를 받으니 기분이 한동안 묘했다. 이 시기를 오래전에 다 겪고 나보다 훨씬 고생스런 세월을 보냈을 걸 알기에 마음 한 구석이 뜨거웠다.
커피와 카페인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그 무엇도 먹지 않겠다 결심하고 나니, 생각보다 카페에서 내가 마실 수 있는 음료가 많지 않았다. 우선 커피종류 제외, 탄산이 들어간 에이드도 제외, 카페인이 들어간 홍차나 얼그레이 티도 제외하고 나면 선택지가 하나도 없는 경우도 많았다. 혼자 카페에 가면 주문을 할 때마다 음료에 어떤 게 들어가는 지 묻게 되었다. 20대 때 아르바이트 하던 때를 생각하면 이렇게 성분을 물어보는 손님이 귀찮게 느껴졌는데, 내가 만난 직원 분들은 감사하게도 많은 배려를 해 주셨다. 새로 나온 딸기 음료를 주문하자 여기에 카페인이 들었는데 괜찮은 지 먼저 물어봐 주시기도 하고, 에이드만 있는 메뉴를 주스로 바꿔 주시기도 했다. 등에 댈 담요까지 챙겨 주시는 분은 정말 감탄 스러웠다.
요 며칠은 정말 살면서 겪어보지 못한 세상에 들어온 느낌마저 들었다. 나만 이기적으로 살던 거고 주변에는 이렇게나 세심하고 다정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구나 실감한다. 가끔씩 들려오는 나쁜 사람들의 뉴스를 볼 때면 이전보다 깊이 속상하지만, 아기와 함께 받은 많은 배려를 잊지 않고 싶다. 모서리를 접어두고 가끔식 펼쳐보는 책의 페이지처럼 오늘을 접어두고 세상에 나올 아기와 함께 다시 펼쳐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