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하다 보면 아주머니 두 분이 서서 한참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다. 한 바퀴를 빙 돌아 집에 가는 길에도 여전히 두 분은 손뼉까지 마주치면서 연신 “그래그래 맞아맞아”를 쏟아낸다. 이십 대 초 중반까지는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왜 세상의 모든 아주머니들의 몸 속에는 저렇게 많은 문장들로 가득 찬 걸까, 두 시간을 통화하고도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만나서 해! 라는 엄마의 말은 정말 놀라웠다. 어떤 세상에 살길래 매일매일 할 이야기가 넘쳐나는 걸까 조금은 궁금했다.
나도 삼십대가 되면서 사회생활의 시간이 쌓이고 결혼생활이 쌓여가는 중이다. 이런 시간들이 쌓인다는 건 마치 마음 속에 모래성을 쌓아 두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입 안이 텁텁해 뱉지 못한 모래알들이 속에서 하나씩 쌓여 성을 이룬다. 참고 삼킬수록 모래성이 높아져 간다. 유난히 힘든 직업을 가졌거나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결혼생활 이거나 어려운 인간관계 때문이 아니다. 그저 세월이 흘러 내 나이가 되고 이정도 역할을 가졌다면 해내야 하는 것들이 있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모래알이다.
사람마다 높아진 모래성을 허물 수 있는 방법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도 결국 ‘수다’ 인 것 같다. 수다의 종류도 많지만 꽉 찬 정보를 주고받는 게 아닌 감정 교환의 수다가 이에 해당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한 명이 겪은 상황과 그 때의 감정을 풀어놓는다. 짧은 설명에도 상대방은 신기하게도 전부 이해하고 “그래그래 맞아맞아”를 외친다. 그런 다음 주로 ‘나도’로 시작하는 이야기와 감정을 풀어놓으면, 다시 맞은편에선 “그래그래 맞아맞아”가 들린다.
아무것도 나아지거나 해결된 건 없고, 돌아가면 똑같은 일을 다시 겪겠지만 헤어지는 두 사람의 얼굴은 후련하고 가슴 속 모래성은 모두 무너지고 파도가 쓸고 간 듯 평평하다. 신기한 일이다. 나에게도 유독 ‘수다’가 잘 통하는 언니가 있는데 아무리 답답한 상황이고 우울하고 속상했어도 언니랑 삼십 분 아니 십분 만 이야기하면 짙었던 감정이 금방 흐릿해 진다. 이건 기적이다.
이제 몇 달 후면 아기와 만나고, 처음 겪는 상황들과 부딪히다 보면 또 다른 색의 모래가 쌓여 새로운 모양의 성이 마음 속에 쌓일지도 모른다. 그 때마다 지금처럼 곁에서 이 모습을 지켜봐 주는 사람들과 가끔 “그래그래 맞아맞아”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또 모든 걸 잊고 새로운 성을 쌓으러 나아갈 수 있겠지. 아주 훗날에 나의 아기가 커서 마주앉아 내 이야기에 한 번쯤 “그래그래 맞아맞아”를 해주면 그 때 주책 맞게 눈물이 찔끔 나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