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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꺼실이 Sep 24. 2020

이삿짐을 든 조합원들

시골에 살아 행복한 의사이야기



이삿짐을 든 조합원들

  “어이, 조심해! 너무 많이 실은 거 아녀?”
“이 책상 보기보다 무겁네.”
“계단을 완만하게 하니 짐 옮기기도 좋구먼”
사람들이 잔뜩 모여 길 건너편으로 짐을 옮기고 있다.

 안성의료협동조합의 첫 의료기관은 안성농민한의원과 안성농민의원이었다. 첫 둥지를 시장 안의 예식장 건물 1층에 틀었고 자리를 잘 잡았다. 3년이 되어 경영이 잘 되는 듯 보이니 집주인은 보증금을 대폭 상승시켰다. 당시 97년인데 보증금을 1억에서 2억으로 올린 것이다. 요즘처럼 임대차 보호법도 없으니 올려 주거나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수차례의 회의를 거쳐 이사를 가는 게 낫겠다고 결정하였다. 마침 건너편에 건물을 새로 지을 계획이 있는 것을 알게 돼 알아보니 비슷한 보증금에 74평에서 150평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의논 끝에 어차피 돈을 더 써야 한다면 앞으로의 발전방향을 생각하여 넓고 새로 짓는 건물로 이사를 하자고 결정하게 된 것이었다. 조합원들은 함께 설계하고 꿈을 꾸었다. 우리가 짓는 건물이 아니었으니 건물주에게 이런저런 요청을 했다. 어르신들을 위해 계단의 경사를 낮춰주기를 요구하고 잡고 올라갈 수 있게 손잡이를 다는 등 세세하게 신경을 썼다.  비용을 최대한 아끼려 다른 병원처럼 화려하게 하지는 못했으나 함께 페인트칠을 하는 등 구석구석 직원과 조합원의 손길이 닿았다.

 드디어 이사를 하는 날이 되었다. 조합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트럭과 손수레를 가지고 나타났다. 이삿짐 차는 부르지 않았다. 바로 길 건너편으로 하는 이사였기에 트럭에, 손수레에 실어 나르기로 했다. 당시 초대 이사를 지낸 김영조 이사님은 망치, 톱 등을 허리춤에 차고 와서 평상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임원과 조합원이 함께 바닥청소를 하기도 하였다. 요즘 창조주보다 높다는 건물주의 욕심을 협동으로 이겨낸, 역사에 길이 남을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사 간 자리에 우리는 조합원들이 모여 회의, 운동 등을 하는 무지개회의실을 만들었는데 지역에 사람들이 모일 장소가 거의 없던 시절에 시민 운동의 산실이 되기도 하였다. 주간보호센터가 없던 시절에 중풍, 치매 어르신을 돌봐드리는 해바라기 교실도 그 자리에서 했다. 이후 치과와 가정간호사업소, 검진센터도 개설하고 3층까지 얻어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협동조합의 CEO는 조합원이다. 여럿이 합의를 거쳐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진행과정이 더디고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토론하고 합의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내용을 숙지하게 되고 한 번 더 생각을 하게 되며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적인 원칙을 배우게 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큰 힘이 된다. 그렇게 되면 한사람의 유능한 CEO가 결정하는 것보다 더 지혜롭고 훌륭한 성과를 만들어가게 된다. 이러한 일들을 여러 번 겪다 보니 위기가 닥쳐도 ‘함께니까...’ 하는 생각에 든든한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오늘도 우리동네의원 운영위원회에 나는 여러 명의 CEO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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