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걱... 의원 이름 그렇게 붙이면 망해!” 안성의료생협을 준비하던 중 마침 안성이 고향인 선배가 계셔 같이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선배는 ‘농민의원’이라는 이름을 듣자 먹던 음식이 튀어나올 듯 놀라셨다. 경영도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이념성이 있는 이름을 붙이면 어쩌냐고 하셨다. 사실 우리도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농민들과 함께 준비한 의료기관이고 같이 해온 힘을 믿었기에 번복할 수는 없었다.
농민의원 이름을 정하는 데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안성 진료회가 처음에는 의대 기독학생회 중심으로 시작이 되었지만 한의사들이 합류해서 진료하면서 의료협동조합을 준비하였다. 동의학 개론도 함께 공부하고 서양의학의 방법론도 알려주면서 양한방 협진을 준비하기도 했던 우리는 ‘공동 의원’이라는 이름을 제안하였다. 의사와 한의사가 공동으로 일하고, 의료인과 농민이 공동으로 준비하고 소유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1993년 추진위원회 집행위에서 당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던 조현선 씨가 문제제기를 하였다. “경제개발의 뒷 그늘에서 소외되어온 농민들과 당신들이 함께 해온 것이고 농민들은 우리가 의료기관의 주인이 될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는데 ‘공동 의원’은 너무 맥 빠지는 이름이 아니냐, 농민의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환자가 오지 않으면 그건 우리 농민들이 해결하겠다.”며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였다. 그의 발언은 잘 흔들리는 우리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었고 다시금 중심을 잡게 되었다. 그는 후에 고삼농협의 조합장이 되어 오리농사, 우렁이 농사 등 생명농업을 이끌어간 분이다. 우리는 이 날을 한국 최초의 의료협동조합으로서 방향성에 방점을 찍은 날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