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은 그림책 작가 지망생이다. 어려서부터 동물을 좋아하던 이 아이는 수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고 2 때 목표를 바꾸어 미대를 가겠다고 했다. 수의학과를 들여다보니 동물 실험도 많고 본인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사실 진정한 이유는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은데 올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 것 같다. 공부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데 공부하느라 청춘을 낭비하고 싶지 않기도 했으리라. 그래도 부모 생각에는 동물 그림도 잘 그리는 수의사가 되면 좋겠다고 했지만 고집이 센 엄마를 닮아 생각이 바뀔 가능성은 없었다.
이 아이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삶을 즐길 줄 안다. 얼마 전에는 독일, 스페인, 모로코, 이탈리아를 25일간 여행하고 돌아왔는데 사진을 보면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모습이다. 수의대를 갔으면 지금 쯤 잘하지도 못하는 공부에 얼마나 시들어 있었을까. 아니 수의대 가지도 못하고 떨어져 재수 삼수, 그리고 나서야 목표를 바꿨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본인을 가장 잘 아는 건 역시 본인이다.
그나저나 동물을 좋아하는 이 아이 덕에 우리는 저렇게 큰 개도 키우고 고양이 한 마리에 닭도 8마리 정도 키우고 있다. 고양이는 태어난 지 2주도 안되어 보이는데 길거리에서 울고 있던 아이를 학교 가던 길에 만나서 데려왔다. 나는 게을러서 동물을 별로 키우고 싶지 않았지만 이 아이 덕분에 여태까지 해보지 못한 것을 많이 경험했다. 닭들이 얼마나 똑똑한 지도 알게 되었고 암탉이 알을 품고 태어난 병아리를 품는 모습도,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모습도 보았다. 고양이가 얼마나 개성 있고 독특한 멋진 존재인지, 개는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 애들 인지도 알게 되었다. 동물을 좋아하면 이 세상을 가장 약자의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공감능력이 깊고 너그럽다. 사진에 보이는 개집은 이 아이가 설계해서 아빠와 같이 만들었다. 중학교를 안성에 있는 총 학생 수 20명밖에 안 되는 대안학교에 다녀서 그런지 톱질도 척척 잘한다.
남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간다지만 아이를 위한 교육 환경은 바로 여기, 안성에서도 금광면 시골이 최고라 생각한다. 동물을 그리는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은 이 아이한테 동물 농장이 되어버린 우리 집 이상 좋은 교육 환경이 어디 있겠는가.